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으로 미국의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데 이어 국가신용등급까지 하락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공포가 커지고 있다. 미국 경기 둔화 우려에 한국의 성장률 전망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 무디스, 108년만에 美 신용등급 강등

23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17일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장기발행자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1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무디스는 1917년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부가 국채를 발행했을 때 Aaa를 부여한 이후 108년 동안 이 등급을 유지해왔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등급을 낮췄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의 본사. /조선DB

미국의 신용등급을 낮춘 곳은 무디스뿐만이 아니다. 앞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011년 8월, 피치는 2023년 8월 각각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낮춘 바 있다. 무디스까지 가세하면서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모두 미국의 최고 신용등급을 철회하게 됐다.

신용등급 강등의 배경에는 막대한 재정적자가 있다. 무디스는 “미 정부와 의회의 무책임한 지출이 재정 적자를 키워왔다”면서 “미국 경제와 금융의 강점을 인정하지만 재정 지표 악화를 완전히 상쇄할 수 없다”고 했다. 앞서 S&P와 피치도 미국의 재정 건전성 악화를 신용등급 하향의 주된 이유로 꼽았다.

이번 결정으로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발표된 미국의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3%(연율)를 기록하면서 3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같은 시기 미시간대가 발표하는 미국의 기대인플레이션(1년 뒤)은 4월 6.5%에서 5월 7.3%로 치솟아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연준은 지난 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기준금리를 동결한 이후 “경제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 증가했다”면서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더 높아질 위험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글렌매드의 제이슨 프라이드 수석 투자전략가는 “스태그플레이션 압력이 연준의 핵심 도전임을 공식적으로 명시했다”고 해석했다. 스파르탄 캐피털증권의 피터 카딜로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연준이 스태그플레이션과 관세발 불확실성에 대해 암시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 韓 경제 타격 불가피… 수출 부진·금리인하 지연 우려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본격화되면 한국 경제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은 우리나라의 2대 교역국으로, 전체 수출의 18.7%가 미국을 향했다.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 소비 및 투자 수요가 줄어들어 한국의 수출도 감소한다. 특히 미국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와 자동차, 전자제품 등 품목의 판매 부진이 불가피하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레드훅 컨테이너 터미널에 컨테이너들이 쌓여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의 물가 상승은 연준이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게 해 한은의 금리 인하를 늦출 가능성도 있다. 현재 한미 금리차는 1.75%포인트(상단 기준, 한국 2.75%·미국 4.5%)다. 오는 28일 열리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금리를 낮춘 다면 2%p로 확대된다. 기준금리 격차 확대는 외국인 투자 자금 유출을 유발해 원화 약세와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제 지표는 이미 경고등을 켜고 있다. 지난달 24일 한은이 발표한 올해 1분기 GDP 성장률(전기 대비)은 -0.2%를 기록하면서 3개분기 만에 역성장했다. 한은의 지난 2월 공식 전망치 0.2%보다 0.4%p 낮은 수준이다. 경기를 지탱해오던 수출은 1.1%, 건설투자는 3.2% 줄었다.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 충격까지 가세하면 성장률 둔화는 본격화될 전망이다.

정부는 아직까지는 미국의 신용등급 여파가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윤인대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최근 한은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과 함께 연 회의에서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은)어느정도 예상된 조치”라면서 “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국의 관세협상 등 이슈가 남아있는 만큼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공동락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시장금리 변동성이 커지지는 않았다”면서도 “하지만 관세 리스크가 여전히 남아있는 만큼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