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 찬 점령군으로 비쳐서는 공직사회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기 어렵다.”

2017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을 맡았던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한 말이다.

당시 국정기획자문위 첫 전체회의에서 김 전 의장은 ‘당, 정부, 청와대의 조화와 협력’을 강조했지만, 일주일 만에 ‘점령군’ 비판에 직면했다. 업무보고를 하는 정부 부처를 향해 “국정철학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했다” “(전 정부에서의) 잘못된 행정 방향에 대한 자기 반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등 쓴소리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문 전 대통령이 내걸었던 ‘이동통신 기본요금 폐지’ 공약 이행 방안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업무보고를 거부당하는 등 시끌시끌 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며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문재인 정부와 마찬가지로 탄핵 정국 이후 탄생한 만큼, 전 정부 정책을 ‘적폐’로 몰아가기 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려는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정부 부처 업무보고가 시작된 지난 18일 국정기획위 위원들은 기재부 직원들을 향해 “똑바로 하라”며 날을 세웠다. 이어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된 경제 정책 전반에 대한 비판과 함께, 경기 진단과 세수 추계 방식에 대한 질책이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기획위는 업무보고 둘째 날인 19일 “공약 분석이나 반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구체적인 비전이나 계획도 부재했다”며 업무보고를 사실상 다시 받겠다고 밝혔다. 셋째 날인 20일에는 검찰청, 해양수산부, 방송통신위원회의 업무보고를 중단시켰다. 이날도 전 정부 정책 실패 반성 의지 부족, 공약 검토 미흡, 보고자료 유출 등을 문제 삼았다.

물론 국정기획위가 기대했던 수준에 공무원들의 준비가 못 미쳤을 수는 있다. 그러나 공무원 집단을 대상으로 싸잡아서 야단치는 것은 앞으로 정권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할 공직자들의 사기를 꺾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정권에 돌아오는 결과로 이어진다. ‘누워서 침 뱉기’나 다름없는 셈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애초 이번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사전투표를 단 하루 앞두고 공약집을 냈다. 통상 선거 기간에 후보자들의 정책 공약 검증이 이어진다. 정부 부처 실무자 역시 후보들의 공약을 미리 짚어보지만, 이번 선거는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특히 대다수 공무원들은 이미 새 정부의 국정 기조에 발을 맞추느라 여념이 없기도 하다. 최근 30조5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마련된 과정이 대표적이다. 이재명 정권의 출범 이후 20여일 만으로, 역대 가장 빠른 속도 수준이다. 앞서 최단 기록은 문재인 정권의 ’28일’이었다.

당초 기재부는 오는 27일까지 추경안을 마련해 30일쯤 국회에 제출하는 일정으로 추경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일주일 더 당겨보라”는 지시가 추가로 하달됐고, 예산실 직원들은 평일 새벽 4~5시에 퇴근하고 주말까지 반납하며 지시를 이행해 냈다.

부족한 점이 느껴졌을때 야단을 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새 정부의 철학과 비전을 실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동력은 공직사회의 전문성과 협력이다. 과거를 반성하라는 호통보다 필요한 건, 새로운 방향을 함께 설계해 나가기 위한 신뢰와 존중의 리더십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