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기관사 출신인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제 경험은…”이라며 말문을 여는 경우가 많다. 그는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34년간 근무했고 장관에 임명된 직후 명예퇴직했다.

김 장관은 지난 29일 언론 브리핑에서도 “제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드리자면…”이라며 답변을 시작했다. ‘노란봉투법’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 것이다.

그래픽=정서희

김 장관의 ‘경험’은 2004년 철도노조 위원장이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김 장관은 “당시 KTX가 개통하며 여성 승무원들이 처음으로 채용됐다”면서 “그들은 정규직으로 채용되지 못하고, ‘홍익회’ 간접 고용으로 그것도 1년 단위 비정규직으로 채용됐다”고 말했다. 홍익회는 열차 내 먹거리 판매 업무를 하는 직원들이 소속된 철도청(현 코레일) 계열사였다.

김 장관은 “KTX 여성 승무원들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철도노조 조합원으로 가입시켰고, 노조는 여성 승무원들의 정규직화를 요구했다”면서 “당시 코레일 사장은 이들이 홍익회 소속 근로자란 이유로 교섭 대상이 안 된다고 했고, 노동위원회 판단도 그러했다”고 했다.

당시 김 장관은 KTX 여성 승무원들에 대한 차별 철폐, 해고 복직 등을 주장하며 나흘간 파업했다. 김 장관은 “(홍익회 소속 근로자가 교섭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파업의 불법성을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됐다”며 “저도 구속·해고를 경험했고, 10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물어준 바가 있다”고 했다.

김 장관은 ‘경험’ 이야기를 마치자 ‘본론’에 들어갔다. 그는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부터 노란봉투법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다”고 했다.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조의 원청 교섭권을 ‘정당한 노동쟁의’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 개정안은 지난 2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김 장관은 ‘노동자 경험론’을 공개석상에서 자주 언급한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김 장관은 “기관사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건널목 사고와 같은 사망·중상 사고를 수습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사례도 들었다. “2004년 지하도 작업을 위해 신도림역 인근 선로를 횡단하던 건설 노동자가 전동열차에 치였고, 사상자를 구호하러 선로에 내려간 기관사도 다른 선로를 달리던 새마을호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때도 김 장관은 경험 이야기를 본론으로 연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일하는 사람 누구나 죽거나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고용노동부 공무원들은 노동자 출신 장관에게 적응하는 기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공무원은 “장관이 경험이라고 말한 내용에 담긴 의중을 파악하는 게 업무가 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다른 공무원은 “오늘은 장관이 무슨 말씀을 하실까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장관이 말한 경험이 엉뚱한 메시지로 해석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반면 “어렵고 복잡한 노동정책을 국민에게 설득하기 위해 장관이 자신의 경험을 잘 활용하는 것 같다”는 반응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