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양파 생산 농가들이 23일 농수산물 종합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제시한 상호관세율 25%를 낮추기 위해 농산물 시장을 개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교체도 요구했다.
전국양파생산자협회는 이날 오후 4시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인근에서 경찰 비공식 추산 기준 2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전국양파생산자대회를 열었다.
남종우 양파생산자협회 회장은 “정부는 (미국과 관세 협상을 하면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며 농업을 추가 개방하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면서 “이재명 정부는 농업에서는 단 하나도 내어줄 수 없다는 단호한 태도를 밝혀달라”고 했다. 농민 단체들은 오는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한미 상호관세 협상 농축수산물 개방 반대 전국 농축산인 결의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앞서 여 본부장은 지난 14일 브리핑에서 “농산물 분야도 이제 전략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제도 개선이나 경쟁력 강화,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 유연하게 볼 부분이 분명히 있다”며 “민감한 부분은 지키되, 그렇지 않은 것은 협상의 전체 큰 틀에서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발언은 자동차·반도체 등 주력 산업이 미국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미국의 농산물 시장 개방 요구를 일부 수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를 두고 양파생산자협회는 지난 16일 성명에서 “이재명 정부는 미국의 통상 압박에 더 개방할 것도 남지 않은 농업을 개방해도 되는지 국민과 농민에게 물어야 한다”며 “농업을 내주자고 말하는 여 본부장을 즉시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지난 14일 성명에서 여 본부장을 향해 “조속한 협상을 이유로 농업을 희생시키지 말라”고 했다.
양파 생산 농가들이 나선 것은 올해 작황이 좋아 가격이 떨어져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5월 가락시장 일평균 양파 반입량은 958t으로 전년보다 5% 늘었다. 수요는 비슷한데 공급이 늘자 국내산 양파 도매 가격은 1㎏당 810원으로, 전년보다 34% 떨어졌다.
정부는 양파 작황이 좋지 못해 가격이 오르면 주로 중국산 양파를 수입해 가격을 안정시킨다. 양파생산자협회는 이날 집회에서 가락시장에서 도매 가격이 정해지는 경매에 수입 양파를 내놓지 말라고 촉구했다. 남 회장은 “공영 도매 시장은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된다. 공공성과 국익을 위해 수입 농산물(을 경매 시장에 내놓는) 상장(上場)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또 가락시장 내 채소 경매장이 좁아 양파 출하가 제한되어 가격 하락을 유발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일본은 이날 미국과 관세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미국의 일본에 대한 상호 관세는 기존에 예고한 25%에서 15%로 낮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이 자동차와 트럭, 쌀과 일부 농산물 등에서 자국 시장을 개방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은 오는 25일(현지 시각) ‘2+2 고위급 통상 협의’를 벌인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여한구 본부장,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