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2022년 공공의료 확충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서울시가 내년 완공을 목표로 했던 ‘서울형 공공병원’ 설립 공사를 3년 넘게 시작도 못하고 있는 것으로 20일 전해졌다. 예산 총 4000억원 중 절반인 2000억원을 국비로 잡아 놨었는데, 이를 받기 어려워진 탓이다.

정부는 병원이 들어설 서울 동남권 4개 구에 모두 대형 병원이 있어 또 병원을 짓는 데 예산을 지원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서울시가 지급 여부가 불투명했던 돈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3년째 첫 삽도 못 뜬 서울형 공공병원

서울시가 공공병원 설립 계획을 밝힌 것은 지난 2022년이다. 앞서 2020년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드러난 공공 의료 시설과 관련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당시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등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의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시설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었다.

이에 서울시는 2026년까지 서초구 원지동에 연면적 9만1879㎡ 규모로, 총 600병상을 갖춘 공공병원을 세우기로 했다. 이 병원은 평상시에는 일반 병원처럼 운영되다가, 감염병 등이 발생하면 동선과 공조 시설을 분리해 일반 환자와 감염 환자를 동시에 수용한다. 코로나19 당시 시립 병원이 모두 감염병 전담 병원으로 운영돼 노인, 노숙인, 장애인, 투석 환자 등 취약계층이 제대로 진료받을 수 있는 시설이 없었다는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까지 병원 설립 공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사비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책정한 병원 설립 예산은 총 4000억원이다. 이는 국비 1998억원과 시비 2001억원으로 구성되는데, 국비 지원이 불투명해진 상태다.

기획재정부는 작년 서울시의 공공병원 설립 계획을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사업에 선정하지 않았다. 기재부는 공공병원 부지 인근에 대형 병원이 많다는 이유로 예타 대상 사업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서초구를 포함한 강남구, 송파구, 강동구 등 서울 동남권에는 서울성모병원(반포동), 삼성서울병원(일원동), 강남세브란스병원(도곡동), 서울아산병원(풍납동), 강동경희대병원(상일동)이 있다. 이른바 빅5로 불리는 대형 병원 중 다수가 이곳에 모여 있어 병원 설립의 ‘시급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이 과거 서울형 공공병원 부지인 서초구 원지동에 설립하려 했던 의료원 조감도. /국립중앙의료원

또 부지가 병원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부고속도로 인근에 있어 소음에 취약하다는 점 때문이다. 이에 과거 국립중앙의료원도 이곳으로 이전하려고 했다가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서울시가 국비를 받을 수 있다고 가정하고 낙관적으로 병원 설립을 추진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관계자는 “병원 설립을 재추진하려는 계획은 가지고 있다”면서도 “전액 시비로 병원을 설립하는 것은 큰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여러 가지 검토할 부분이 많다”고 했다.

◇市, 부지 방치되자 내년 파크골프장 개장

병원 설립 공사가 미뤄지면서 방치된 땅은 내년 파크골프장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서초구가 병원 건립 사업이 부진하자 서울시에 이런 제안을 했고, 서울시가 받아들인 것이다. 양측은 내년까지 병원 부지 1만4307㎡에 9홀짜리 파크골프장을 설립할 계획이다. 서초구는 최근 행정안전부의 지방재정 중앙투자심사에서 병원 부지에 파크골프장을 설립해도 된다는 ‘조건부 추진’ 판단도 받았다.

병원 부지에 파크골프장이 들어서면서 병원 설립 계획이 백지화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파크골프장은 병원 착공 전까지 임시로 쓰는 것”이라고 했다. 병원 부지에 세워질 파크골프장 설립 예산은 서울시가 475억원, 서초구가 13억원을 부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