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계양구 계양산에는 지난달 말 일명 ‘러브버그’라 불리는 붉은등우단털파리가 대량 발생했다. 사람이 발을 디딜 틈이 전혀 없을 정도로 등산로에 가득 차고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떼지어 날아다니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러브버그는 이달 초 자연 소멸했지만, 인근 주민들은 “내년이 더 큰일”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방제 책임을 두고 계양구와 환경부가 떠넘기고 있어서다.
◇계양산 밑 식당 중 “6월 매출 100만원도 안 되는 곳도”
18일 계양구 보건소에 따르면 러브버그 관련 민원이 처음 접수된 것은 지난달 23일이다. 하루에 접수된 민원은 20여 건이다가 26일에는 159건으로 급증했다. 민원은 이달 8일 2건 접수를 마지막으로 끊겼다. 러브버그 성충은 장마가 시작될 무렵 대량 발생해 2~3주 후 자연 소멸하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찾은 계양산에는 러브버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인근 주민들은 그 광경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이모(68)씨는 “여기에 40년 넘게 살면서 벌레가 그렇게 많은 것은 처음 봤다. 계양산에서 약 500m쯤 되는 계산역 사거리까지 러브버그가 다 뒤덮었다”고 했다. 김모(55)씨는 “벌레들을 쓰레받기로 밀어도 끝이 없고, 살충제를 뿌려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고 했다.
문제는 내년이다. 러브버그 암컷 한 마리는 300~500개의 알을 습한 땅속이나 유기물이 많은 흙·낙엽 더미에 낳는다. 알은 크기가 매우 작고 흙 속에 광범위하게 퍼져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아 제거가 어렵다. 이미 계양산 땅 속을 러브버그 알이 뒤덮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계산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신승주(37)씨는 “6월 말에는 러브버그가 일대를 뒤덮어 오가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 주변 식당 중에는 6월 매출이 100만원도 안 되는 곳도 있다”면서 “내년에는 당국이 일찍 방제에 나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으라”는 구청장, 방제라며 ‘잠자리채’ 휘두른 환경부
주민들은 방제를 담당하는 계양구나 환경부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다며 불만을 표했다. 윤환 계양구청장은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러브버그와 관련해 “국민들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좀 참을 줄도 알아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당시 계양구 직원들은 계양산에 올라 러브버그 사체를 삽으로 퍼 포대에 담아 버리는 정도의 ‘방제’를 하고 있었다. 논란이 커지자 환경부가 지난 4일 계양산에서 방제 작업을 했다. 러브버그는 2022년부터 수도권 곳곳에서 대량 발생했는데, 중앙부처가 직접 방제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만 이미 러브버그가 자연 소멸할 때쯤 방제를 시작한 것이어서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됐다.
방제 작업도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송풍기와 포충망, 살수 장비가 동원됐는데, 환경부가 공개한 영상에서는 작업자들이 잠자리채처럼 생긴 포충기를 들고 흔들었다. 계산고 학생 안모(17)군은 “방제 영상을 봤는데 웃겼다. 잠자리채 같은 걸 휘둘러서 효과가 있을까”라고 했다.
러브버그 방제가 늦었고 그나마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주민들의 지적에 대해 계양구 관계자는 “처음 겪는 일이어서 대비를 못 했다”면서 “민원을 받고 처음 현장에 갔을 때는 러브버그가 이미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환경부는 뒤늦게 인원을 보태줘 계양구를 도와준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러브버그가 대량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러브버그는 병균을 옮기는 해충이 아니어서 사전 방제를 할 수 없다. (살충제를 이용하는) 화학 방제는 환경부가 생태계 파괴를 이유로 권고하지 않는다”며 “환경부도 사전 방제 방법을 모른다고 한다”고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우리가 지침을 안 줘서 러브버그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건 아니다”라며 “러브버그 방제 책임이 환경부에 있다는 명확한 근거도 없고, 예측하기 어려운 자연 현상”이라고 했다. 러브버그를 사전에 방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중장기 연구개발(R&D) 과제로 개발할 것”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어느 쪽이든 내년에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을 해야 한다고 했다. 계산역 인근 한 식당 점주는 “구청장은 ‘참으라’고 했다는데 본인은 (러브버그 때문에) 장사가 안 되면 참을 수 있나”라며 “내년에도 올해 같아선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계양산 등산객 박모(80)씨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박멸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