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계천 청계광장에는 ‘소망석’이 설치돼 있다. 폭 36㎝, 길이 76㎝의 타원형 석재 구조물에 동전을 던져 넣으며 행운을 기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 8일 오후 소망석 주변을 지나는 외국인 관광객 중에 행운의 동전을 던지는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스페인에서 온 산티아고(56)씨는 “행운의 동전을 던지는 곳이라고요? 아무도 말을 해주지 않아서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출신인 마유(45)씨도 “소망석이 있는 줄 알았으면 동전을 준비했을 텐데…….”라고 했다. 마유씨 일행인 단체 관광객을 안내하는 한국인 관광 가이드도 “지금껏 동전을 던지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날 외국인 관광객 9팀을 관찰했더니 행운의 동전을 소망석에 던진 것은 한 팀에 그쳤다.
코로나19로 줄어들었던 외국인 관광객이 다시 돌아오고 있지만 청계천 소망석에 던져지는 외국 동전은 늘어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홍보 부족’ ‘중국인 관광객 감소’ ‘현금 없는 사회’ 등 세 가지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 외국인 관광객 코로나 이전 수준 회복… 행운의 동전은 6분의 1 분량
청계천 소망석은 지난 2008년 설치됐다. 지금까지 한국 동전 4억 4808만 7403원 어치, 외국 동전 39만 995점이 수거됐다. 동전이 가장 많이 수거된 해는 2014년이다. 그해 원화 동전 6300만원 어치가, 외국 동전 8만3000점이 각각 소망석에 던져졌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소망석에 모이는 행운의 동전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국내 동전은 2019년 2500만원에서 2020년 396만원으로 급감했다. 이후에도 연간 300만원 안팎 수준에 그치고 있다.
주로 외국인 관광객이 던지는 외국 동전도 마찬가지다. 2019년에는 1만8384점이 수거됐는데 2020년에는 2537점으로 감소했다. 이후에도 연간 3300점 수준에 머물고 있다.
코로나 종식 이후 외국인 관광객이 과거 수준으로 회복되고 있지만 청계천 소망석의 외국 동전은 6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외국인 관광객은 2019년 1750만명이었는데 2020년 251만명, 2021년 96만명으로 급감했다. 하지만 2022년 319만명 , 2023년 1103만명, 2024년 1637만명 등으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 ‘홍보 부족’ ‘중국인 관광객 감소’ ‘현금 없는 사회’가 원인으로
이런 상황에는 세 가지 원인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홍보 부족’이다. 지난 8일 현장에서 만난 외국인 관광객들은 소망석 자체를 아예 보지 못했거나 관련 안내판을 접하지 못했다고 했다. 소망석 안내 표지판이 청계천 통로 바닥과 청계천 양측 벽면 등 3곳에 붙어 있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의 눈에 띄지 않은 셈이다. 소망석 근처를 지나던 이모(33)씨도 “청계천 인근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행운의 동전을 던지는 곳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또 ‘중국인 관광객 감소’도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행운의 동전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 관계자는 조선비즈와 통화에서 “행운의 동전을 던지는 외국인 관광객 중에 중국인 관광객 비율이 높았는데, 지난 2017년 중국의 한한령(限韓令) 이후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줄어든 영향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인 관광객은 지난 2016년 800만명이 넘었지만 2017년에는 417만명으로 급감했다. 지난해 460만명까지 늘었지만, 한한령 이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6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아울러 ‘현금 없는 사회’가 보편화됐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서울시설공단 관계자는 “모바일 핀테크가 발전하다 보니 동전 자체가 없어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동전 자체를 가지고 다니지 않게 되면서 소망석에 동전을 던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됐다는 것이다.
한편 행운의 동전 던지기로 유명한 이탈리아 로마의 트레비 분수에서는 지난 2022년 140만 유로(약 20억 7000만원), 2023년 160만 유로(약 23억 7000만원)가 각각 수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