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저녁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제12차 전원회의 참석자들이 손을 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최저임금위원회가 10일 내년도 최저임금 시급을 1만320원으로 결정했다. 지난 2008년 이후 17년 만에 노사공 합의로 이뤄진 것이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폭은 2.9%로, 2000년대 들어 역대 정부 첫 최저임금 인상률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다만 노사공 합의 과정에서 근로자 위원인 민주노총 위원들이 퇴장해 ‘반쪽짜리’ 합의라는 지적도 있다. 이에 이인재 최임위 위원장은 “민주노총 위원들의 중도 퇴장은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면서 “합의로 갈등을 해결하는 저력이 있음을 확인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노사공 첫 회의 후 80일만에 합의…법정 시한 넘겨

내년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최임위는 지난 4월 22일 1차 회의를 시작으로, 7월 10일까지 총 12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노사가 최저임금 수준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6월 19일 6차 회의부터다. 최임위는 이전 회의에서 도급제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확대 적용과 업종별 구분 적용에 대해 논의했었다.

노사의 최초 최저임금 요구안 격차는 1470원이었다. 근로자 측은 올해보다 14.7% 인상된 1만1500원, 사용자 측은 동결한 1만30원을 제시했다. 이 격차는 노사가 6차례 수정안을 제시한 끝에 1000원대 밑으로 내려갔지만, 그 이후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이에 최임위는 법정 시한을 넘겨 심의를 계속해 왔다. 최임위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심의 요청을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최저임금 수준을 의결해 고용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앞서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3월 31일 최임위에 심의를 요청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법정 시한은 6월 29일이었다.

이렇게 법정 시한을 넘겨 심의하는 상황은 거의 해마다 반복돼왔다. 지난 1988년 최저임금이 도입된 이후 올해까지 법정 심의 시한이 지켜진 것은 총 9차례뿐이다.

이날 최저임금 수준이 결정되면서 고용부 장관은 최임위로부터 의결 결과를 받은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내년도 최저임금을 고시해야 한다. 법정 고시 시한은 8월 5일로, 고시된 최저임금은 2026년 1월 1일부터 적용된다.

이인재 최저임금위원장이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2차 전원회의에서 내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320원으로 결정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李정부 첫 최저임금 인상 폭 2000년대 최저 수준

이날 결정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은 2.9%다. 노동계는 2000년대 들어 역대 정부 첫 최저임금 인상률 중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앞서 역대 정부 첫 해 최저임금 인상률을 보면 ▲김영삼 정부 7.96% ▲김대중 정부 2.7% ▲노무현 정부 10.3% ▲이명박 정부 6.1% ▲박근혜 정부 7.2% ▲문재인 정부 16.4% ▲윤석열 정부 5.0% 등이다. 이중 김대중 정부의 경우 IMF 외환위기 상황이었다. 이를 제외하면 역대 최저 인상 폭이다.

이렇게 최저임금 인상률이 낮아진 것은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심의 촉진 구간에 따른 것이다. 심의 촉진 구간은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 인상 폭에 대한 노사 합의가 어렵다고 판단해 상·하한선을 제시하는 것이다. 올해 심의 촉진 구간은 1.4~4.1%였다. 최상한선인 4.1%로 결정되더라도 앞선 정부보다 낮은 인상률이다.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0.8%에 그쳐 전년보다 2배 이상 낮고, 물가도 작년이 올해보다 높았다”며 “작년에도 심의 촉진 구간을 1.4~4.4%를 제시했는데 올해가 작년에 비해 높거나 낮게 냈다고 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올해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고려할 때 작년과 유사한 수준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민노총 퇴장에도 최임위 “노사공 합의”

최임위는 이날 최저임금 수준 결정 과정이 “노사공 합의”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인재 위원장은 “2008년 이후 17년 만에 표결 없이 합의로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했다”고 했다. 권순원 교수도 “근로자 위원 5명이 남아 근로자 대표로 합의해 준 것”이라며 “이는 17년 만에 노사공이 합의한 결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민주노총이 중도 퇴장한 만큼 ‘반쪽짜리’ 합의라는 지적도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회의에서 퇴장한 뒤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심의촉진 구간은 노동자의 삶을 도외시한 채, 사용자의 주장만을 반영한 기만적인 안”이라며 “노동자의 삶을 외면한 공익위원 전원의 즉각 사퇴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인재 위원장은 “민주노총 위원들이 퇴장했기 때문에 충분한 신뢰 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며 “향후 내년 (최저임금) 논의도 하겠지만, 좀 더 신뢰를 줄 수 있도록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접촉하고 노력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