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10시쯤 서울 광화문의 한 빌딩 옥상 벽면에 러브버그 한 쌍이 붙어 있다. /김관래 기자

서울 은평구 봉산 편백나무숲은 일명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가 집단으로 발생하는 곳 중 하나다. 지난 24일 오전 조선비즈 기자가 봉산에 갔더니 바로 러브버그 대여섯 마리가 들러붙었다. 손으로 쳐냈지만 주변에 수십 마리씩 날아다니고 있던 러브버그가 또 달려들었다. 산 아래 아이스크림 판매점 주인은 매장 안과 바깥에 죽은 채 쌓여 있는 러브버그를 빗자루로 쓸어내고 있었다.

러브버그는 서울에서 지난 2022년부터 장마철에 집단 발생하고 있다. 암컷과 수컷 한 쌍이 붙어서 건물 안팎을 가리지 않고 떼 지어 날아다니기 때문에 민원이 제기된다. 지자체는 익충(益蟲·이로운 곤충)이라며 물을 뿌려 쫓아내고 있다. 이에 대해 시민과 자영업자들은 “사실상 해충이니 살충제로 박멸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24일 오전 10시쯤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봉산 인근의 한 가게. 출입문 쪽 바닥에 러브버그 사체가 쌓여있다. /이호준 기자

◇러브버그 민원, 1년 새 배 이상 증가… 서울 전역 확산

26일 서울시에 따르면 러브버그 방제 요청 민원은 2023년 4418건에서 작년 9296건으로 두 배로 늘었다. 대규모 발생 지역도 2022년에는 은평구가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양천구, 구로구, 도봉구 등 서울 전역으로 퍼졌다.

러브버그는 식당이나 카페 유리창에 다닥다닥 붙어 있고 매장 안으로도 들어오기도 한다. 이 때문에 자영업자들은 피해를 호소한다. 은평구 녹번동 백련산 주변에서 국숫집을 운영하는 김모(51)씨는 “작년보다 러브버그가 더 많아져서 요새 가게 출입문을 못 열어놓는다”고 했다. 인근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박모(61)씨도 “오늘(24일) 아침에도 수북이 쌓인 러브버그 사체를 치웠다”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러브버그 사진들 /SNS 캡처

◇대규모 발생 곤충에 ‘친환경 방제’가 우선… 자영업자 “물 뿌리는 게 효과 있나”

지자체는 민원이 접수되면 방제 작업에 나선다. 그런데 모기나 바퀴벌레 등과 달리 살충제를 뿌리는 화학적 방제가 아닌 살수(撒水) 방식의 ‘친환경 방제’를 실시하고 있다. 윤영희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이 발의한 ‘서울시 대발생 곤충 관리 및 방제 지원에 관한 조례’가 지난 3월 제정된 데 따른 것이다. 이 조례는 ‘서울시장은 대발생 곤충을 방제할 때 친환경 수단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자체는 친환경 방제를 위해 러브버그가 건물 외벽, 창틀, 차량 유리 등에 많이 붙어 있으면 양동이나 호스를 이용해 물을 뿌려 씻어내고 있다. 러브버그는 일단 떨어져 나가지만 잘 죽지는 않는다. 다음 날 다른 매장의 유리창에 붙어 있게 될 수 있는 셈이다.

매일 러브버그 떼를 마주하는 자영업자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인왕산 인근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강모(28)씨는 “가게 문을 열어 놓으면 러브버그가 들어와 손님들이 불편을 호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영업에 방해가 될 정도인데, 고작 물을 뿌리는 것으로 되겠느냐”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가 작년 여름 러브버그가 대규모로 발생하자 살수 방식으로 친환경 방제 작업을 하고 있다. /양천구 제공

◇“러브버그, 해충 아닌 익충이에요” 홍보 강화하기도… 시민들은 “불쾌하다, 해충”

반발이 나오자 자치구들은 홍보를 강화했다. 관악구가 제작한 교육 자료에는 러브버그는 병원균을 옮기지 않고 사람을 물지 않으면서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익충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서울연구원이 작년 6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6%는 ‘러브버그는 대량 발생해 시민에게 피해를 끼치니 해충’이라고 응답했다. ‘공포·불쾌감을 유발하는 벌레’ 조사에서는 바퀴벌레(66%, 중복 선택 가능), 빈대(60.1%)에 이어 3위(42.6%)에 올랐다.

서울연구원 '유행성 도시해충의 확산 실태와 건강도시 서울의 대응방안' 자료 중 일부.

러브버그가 대규모 발생한 봉산 인근 주민 안모(26)씨는 “사람에게 떼로 달려드는데 어떻게 익충이냐”면서 “살충제를 써서 다 잡아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은평구 관계자도 “주민들은 혐오스럽다고 민원을 넣는다”며 “(지침과 민원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