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후 10시 서울 송파구의 한 사우나 사장 A씨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가게 문을 내리고 있었다. 실내에서도 두꺼운 패딩을 걸친 채 손난로를 들고 있던 그는 “한 푼이라도 운영비를 아끼기 위해 사우나 입구 난방기를 끄고 있었다”고 했다.
지난 몇 년간 A씨는 사업을 접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코로나19 직격탄에 이어 치솟은 가스·수도 요금 등 운영비를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엔 빈대 논란까지 확산되면서 그나마 이어져 오던 손님들 발길이 뚝 끊겼다. A씨는 “지난달부터 손님 수가 회복되기 시작하다가 빈대 공포 때문에 불과 몇 주 만에 다시 손님이 끊겼다”며 “폐업도 고민했는데 비용만 3억8000만원이 나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2020년 이후 지금까지 적자만 해도 6억원에 달한다.
지난 4년간 어렵사리 코로나19와 공공요금 인상을 버텨온 목욕장업이 최근 ‘빈대 포비아(공포증)’까지 겹쳐 삼중고에 직면했다. 지난 10월 인천 서구 한 사우나에서 빈대가 발견되면서 목욕장·사우나가 ‘기피 장소’로 바뀐 영향이다. 사우나에서 빈대가 출몰했다고 알려진 지 약 1달 만에 서울 강서구·송파구 목욕장업 매출은 20%나 줄었다. 24시간을 운영할 땐 최저시급조차 벌기 어려워 폐업 견적을 받아봤다는 업주들은 ‘억소리’나는 폐업 비용을 생각하면 그마저도 쉽지 않다며 한숨을 쉬고 있다.
23일 조선비즈가 서울 시내 목욕탕·사우나들을 둘러 본 결과, 상당수가 온라인에선 ‘영업 중’으로 표시돼 있지만 실제로는 휴업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곳들은 적자로 폐업 위기에 놓였지만, 철거 비용도 만만치 않아 ‘임시휴업’을 하거나 ‘운영단축’을 하고 있었다.
목욕장업은 건물 안팎 모든 시설을 뜯어내야 해서 다른 업종과 비교해 철거 비용이 높은 편이다. 보일러실, 배관시설, 굴뚝 등 사우나 규모에 따라 적게는 수천만원부터 많게는 수억원이 든다고 한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24시간 불가마 사우나는 운영시간을 단축했다. 빈대 확산 소식이 알려진 뒤에는 수면방을 폐쇄했다. 사장 권모(62)씨는 “새벽에 근무하는 알바생을 고용하고 싶어도 매출이 줄어서 최저시급을 줄 여력이 안 된다”며 “운영시간 단축과 시설을 부분적으로 폐쇄해 인건비와 난방비를 아끼고 있다”고 했다. 빈대가 출몰된 지역은 아니지만, 손님들 사이에서 ‘빈대 포비아’가 확산하면서, 목욕탕은 위험하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는 게 권씨의 설명이다.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목욕탕 입구에는 “피부 질환이 있으신 분이나 빈대 등에 물려 가려운 분은 입욕을 사양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매표소에 부착돼 있었다. 빈대로 손님이 줄어들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목욕탕 사장 B씨는 “오전 4시에 일어나서 5시에 문을 열고 영업을 종료하고 집에 가면 10시가 넘는데 수익은 ‘0원’에 가깝다”며 “4년간 쇠퇴해 오던 업계가 올해 겨울부터 드디어 빛을 보나 했는데, 이대로 가다간 목욕장업 자체가 통으로 사라질 판”이라고 했다.
이영호 한국목욕업중앙회 강동·송파 지회장은 “목욕장업은 겨울 장사라서 11월부터 손님이 많아져야 하는데,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지난해 11월보다 고객이 15%가량 줄었다”며 “코로나19, 공공요금 인상에 빈대 공포까지 확산하면서 동네 목욕탕들이 폐업과 휴업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나 지자체에서 목욕 이용권을 활성화하고 목욕장을 거점화해 상생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