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8시 30분, 서울 회기역 1번 출구. 챙이 넓은 선캡을 쓴 김 모(80) 씨가 지하철역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분주하게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다. 약 1시간 동안 건넨 전단지가 무려 100장. 우악스럽게 품 안으로 들이미는 게 아니라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슥 내밀었다가 거절하면 쿨하게 가져오는 게 김 씨의 노하우다. 시급은 1만원. 하루 1~2시간 일을 해서 월 50~60만원을 번다.
김 씨는 60대 때부터 용돈벌이로 전단지 배포 알바를 했다. 일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 뚝 끊겼다가 요즘 다시 늘고 있다고 한다. 덥고 추워도 짧은 시간 동안 원하는 곳에서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어 편하다. 요즘 가장 고마운 사람들은 젊은이들이다. 그는 “젊은 사람들이 할머니 고생한다면서 직접 와서 달라고 가져가는 경우가 있다”라며 “전단지가 진짜 필요해서 가져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정말 고맙다”라고 말했다.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는 70대 이상 고령층의 전유물이다. 1~2시간 땡볕이나 추위를 견디면서 아무리 전단지를 많이 돌려도 시급 밖에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젊은층에 인기가 없다. 어차피 인터넷 검색을 하면 필요한 정보를 다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 전단지는 짐이 된 지 오래다. 전단지를 필요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읍소하듯 다가가 쥐여줘야 하는 업무 자체에 스트레스를 느끼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고령층에겐 조금 힘들어도 보람찬 일자리다. 김 모 씨는 “조금 덥고 춥더라도 여든의 나이에 자식들한테 손 벌리지 않고 생활비를 벌고 손녀에게 용돈도 줄 수 있어 뿌듯하다”라며 “이 나이에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한 전단지 대행업체 대표는 “노인들이 직접 일자리를 찾고 있다며 연락해 온다”라며 “길거리에서 전단지 배포를 하고 있는 다른 분께 어떻게 일을 구했는지 물어서 연락이 오기도 하고 지인을 통해 오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40년째 전단지 돌리는 일을 했다는 안 모(71) 씨는 아침, 점심 4시간에 걸쳐 하루에 최소 600장에서 많게는 800장까지 돌리는 ‘전단지 고수’다. 기온이 34도까지 올라간 2일 낮 12시 서울 광화문 새문안교회 뒷골목에서 만난 그는 목에 휴대용 선풍기를 건 채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에게 헬스장 전단지를 잽싸게 건넸다. 그는 “더위도 익숙해져서 괜찮다”라며 “젊었을 때 처음에 일 시작할 땐 사람들한테 전단지 내미는 게 쑥쓰럽고 거절하면 못 내밀겠고 그랬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라고 말했다.
인근에서 만난 이 모(65) 씨는 코로나로 취미였던 수영을 못 하게 되면서 생긴 무료함을 극복하려고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폭염이 심할 땐 지하철 출구나 나무 그늘이 있는 곳을 찾아가 잠시 쉬었다 일한다. 그는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돌리면 창피하지 않냐고 주변 사람들이 물어보기도 했다”면서 “창피하기는커녕 젊은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에 와 있으면 나도 같이 젊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고 말했다.
일부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전단지의 광고 효과가 있다고 판단해 꾸준히 일감을 맡긴다. 광화문에 위치한 한 필라테스 센터 대표는 “‘오픈 기념’, ‘확장 기념’과 같이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전단지를 만들어 배포한다”며 “운동 생각이 없던 사람들도 전단지에 적힌 이벤트 가격을 보고 ‘이 기회에 한 번 해볼까?’하는 호기심이 생겨 연락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