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 병원에서 진행합니다. 해외도 가능합니다.”
작년 4월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온 글이다. 글 밑에는 ‘귀신헬리콥터’ ‘신장매매’ ‘장기매매’ ‘장기이식’ ‘신장이식’ ‘간 매매’ ‘공여’ ‘기증’ 등 여러 해시태그가 달렸다. 귀신헬리콥터는 과거 지하철 화장실에 붙어있는 광고문구로 시민들 사이에선 심장·신장·각막 등 장기매매를 일컫는 은어로 알려져 있다. 이 글을 올린 A(36)씨는 자신의 텔레그램 아이디도 함께 게시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몰린 B씨는 자신의 장기를 팔기 위해 A씨에게 연락했고, A씨는 “신장이 필요한 환자에게 신장을 기증하면 4500만원을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며 “이를 위해서는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인 코노스(Konos) 등록 비용과 검사 비용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믿은 B씨는 A씨 계좌로 250만원을 송금했다. 그러나 A씨는 장기매매 브로커가 아니었고 장기 기증 대가를 지불할 능력도 없는 사람이었다. 장기매매 알선 사기를 당한 B씨는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입고 실의에 빠져 극단적 선택을 했다.
과거 기승을 부렸던 장기매매 알선 사기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버티지 못하고 불법이라도 장기를 팔겠다는 사람들에게 수천만원의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접근한 뒤 각종 검사·등록·위조 비용을 핑계로 돈을 가로채는 수법이다.
◇ “장기 코디네이터”라 속인 뒤 서류 위조 명목으로 돈 가로채기도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권성수 부장판사)는 지난달 21일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위반과 사기 혐의를 받는 A씨에게 징역 3년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A씨는 작년 4월부터 같은해 6월까지 장기를 기증하거나 판매하면 수천만원의 돈을 주겠다고 속여 B씨를 포함해 9명으로부터 검사비 명목 등으로 총 3648만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모 대학교에서 근무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신의 장기를 팔겠다는 사람들을 타깃으로 삼아 돈을 가로챈 사건은 이뿐만이 아니다. 2021년 10월에는 비슷한 수법으로 81만원을 가로챈 B씨 등 3명에게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이들은 장기를 팔겠다는 글을 올린 사람들에게 연락해 자신들을 “병원에서 일하는 장기 코디네이터”라고 소개한 뒤 간을 이식하는 대가로 6000만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간 이식을 위해서는 각종 검사비와 서류위조비가 필요하다고 속여 수십만원을 받아냈다.
2018년에는 ‘장기를 팔고 싶다’는 취지의 인터넷 사이트 글을 올린 피해자에게 검사비를 주면 한 달 내에 수술을 해주고 1억원을 주겠다고 속여 240만원을 가로챈 사건도 벌어졌다. 법원은 사기를 친 C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 SNS에 장기매매 글 수두룩…”미수범 처벌 규정 없어”
장기매매의 경우 장기를 사는 사람과 매매를 중개해준 사람은 물론 장기를 판매한 사람도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가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생활고로 벼랑 끝에 몰린 일부 사람들은 장기매매가 불법인 줄 알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장기를 판매하겠다는 글을 올리고 있다.
조선비즈가 SNS에 장기매매와 관련된 은어를 조합해 검색하자 자신의 나이·키·체중·혈액형을 적고 자신의 장기를 판매하고 싶다는 글을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SNS 아이디를 남기며 연락을 달라고 했다. 일부는 “해외에서 (수술을) 하고 싶다”고 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술·담배 안 한다. 신체 건강하다”고 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장기매매 홍보글을 올리는 행위를 처벌할 규정은 없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허점이 장기매매 알선 사기가 근절되지 않는 여러 이유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홍보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는 만큼, 이들을 속이고 돈을 가로채려는 사기범들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자신 또는 타인의 장기를 주거나 이식하기로 약속하는 행위는 처벌 대상이지만, 장기매매 홍보글은 ‘약속하는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장기매매 홍보글 게시에 대해 “청약 상태에 불과하고 실제 매매계약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장기이식법상 미수범에 해당한다”며 “(장기이식법에는) 미수범 처벌규정이 없어 처벌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다만 “장기이식법의 입법취지와 헌법상 인간윤리를 고려하면 사법부가 ‘약속하는 행위’의 개념을 넓게 보아 처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