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해 희귀·난치성 뇌전증 환자의 치료를 위해 대마 성분의 의약품을 허용한 데 이어 의료용 대마에 대한 규제를 점차 풀 예정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의료용 대마 제품의 90% 이상이 권장치 이상의 마약성 물질을 포함하며 부작용·오남용 사례도 잇달아 보고됐다. 전문가들은 의료용 대마 연구를 위한 법률 개정, 규제 완화와 함께 대마에 대한 인식 교육도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대마는 삼(hemp)이라고도 하며 잎과 꽃이 대마초로 사용되고, 줄기로는 삼베, 그물을 만들고, 열매는 향신료나 약재, 종자는 채유용으로 쓰인다. 대마 식물에는 THC(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와 CBD(칸나비디올)라는 칸나비노이드류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THC는 도취, 환각 상태를 일으키고 의존성과 남용성, 탐닉성이 있는 성분인 반면 CBD는 쾌감과는 무관하고 중독성이 없으며 의학적 효능을 보이는 성분이다.
의료용 대마는 THC 성분을 줄이고 CBD 함량을 높인 대마 식물이다. 여기서 추출한 CBD 성분은 특정 암세포를 죽이거나 통증과 염증 완화, 항발작, 항불안 등의 치료에 유용하다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CBD를 주성분으로 한 뇌전증 치료제 에피디올렉스(Epidiolex)는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국내로 수입되고 있다.
따라서 식약처에서도 의료용 대마와 관련된 국내 규제를 서서히 풀어나갈 예정이다. 지난해 발표한 식의약 규제 혁신 100대 과제 안에는 의료용을 위한 대마의 제조나 수입을 허용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은 2024년 12월까지 개정할 계획이라 밝혔다.
◇ 부작용·오남용 우려에 대마에 대한 인식 개선까지... 멀고도 험한 ‘의료용 대마’
그러나 CBD 자체로도 졸림이나 피로, 기분 변화, 소화 장애, 설사, 두통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정신적 의존 등 오남용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일부 연구자 사이에서는 의료용 대마의 효능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의료용 대마를 연구하는 국내 A 교수는 “국내에서는 2019년부터 연구를 시작하는 등 관련 연구가 초기 단계라 그런 것”이라며 “부작용 사례를 드물지만 모든 의약품에는 부작용이 있는 만큼 적절한 투여량과 복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현재 대마는 모두 마약류로 분류되어 있어 의료용 대마 재배나 의약품 개발, 임상 시험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해외에서는 의료용 대마 제품 대부분에서 권고 기준 이상의 THC가 검출되기도 했다. 미국 웨이크포레스트의과대 연구진은 2020년 의료용 대마 제품의 90%에서 만성 통증을 완화할 수 있는 기준인 5%의 2~3배에 달하는 THC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정재훈 전북대 약학대학 교수는 “해외에서는 대마 성분의 의약품이 허가를 받기까지 과정이 복잡하고 가격도 비싸 사용이 쉬운 대체 제품의 수요가 높아졌다”며 “대마 제품의 오남용 사례가 많아졌다”고 했다. 최형우 국립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마약성 물질인 THC를 별도로 추출해서 쓸 수 있지만, 경제성이 맞지 않다”며 “그래도 기준치를 잡아 규제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전문가들은 대마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교수는 “국내 사이트에서 ‘CBD 오일’이라 검색하면 제품이 많이 나오지만 모두 마약류 관리법상으로는 불법인 제품으로, 법과 제도가 혼란을 일으킨다”며 “태국에 가면 길거리에서도 대마를 한다며 안일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따라서 법과 제도를 명확하게 손보고 일찍부터 대마는 위험 물질이라는 인식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A 교수 역시 “마약성이 없는 의료용 대마는 헴프라고 따로 명명해서 구분 지어야 알려야 한다”며 “의료용만 엄격히 허용하고 안전 관리 체계도 손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식약처는 “희귀질환 환자의 치료권익 강화를 위해 대마성분 의약품도 여타의 의료용 마약·향정신성의약품과 같이 품목허가를 받아 제조‧수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검토 중에 있다”며 “마약·향정신성의약품과 같이 안전성·유효성 검토 후 의약품으로 품목허가하고, 수출입 때마다 승인받도록 하며, 마약류취급자에게만 취급을 허용하는 등 법령에 따라 오남용 및 불법 유출을 방지할 예정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