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주택가에서 18년째 세탁소를 운영하는 강윤옥(68)씨는 지난해 12월 양복 한 벌 세탁비를 7000원에서 1만원으로 올렸다. 강씨는 양복 세탁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세탁·수선 비용을 1000~3000원 인상했다. 단골손님들의 불평·불만이 쏟아졌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옷걸이부터 비닐까지 세탁소에 필요한 모든 게 곱절 이상으로 가격이 올랐다”고 말했다.
강씨는 한달에 1번꼴로 옷걸이와 드라이클리닝 기름 등을 구매한다. 지난달 31일 강씨가 각종 소모품을 사면서 지불한 돈은 46만7000원. 지난해 3월 12일 지출내역서와 비교했을 때, 동일한 소모품을 같은 양으로 구매하는데 필요한 돈은 39만원이었다. 1년 새 소모품비 지출이 19.7%가량 뛴 셈이다. 여기에 강씨는 “지난해 건물주가 월 임대료를 5만원 올렸다”고 했다.
동네 세탁소 업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1인가구에 인기인 무인·코인세탁소가 급증하는 가운데 기름값과 철광석 등의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세탁소에 사용되는 각종 소모품비가 올랐기 때문이다. 울며 겨자먹기로 소비자들에게 받는 가격을 올리고 있지만 오랜 단골들이 등을 돌릴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9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정유사의 솔벤트(용제) 평균 판매가는 리터(ℓ)당 916.4원이다. 솔벤트는 드라이클리닝에 쓰이는 유기용제의 주요 원료다. 1년 전인 2021년 12월 ℓ당 가격(808원)과 비교하면 13.4% 오른 셈이다.
석유 가격 상승은 세탁된 옷에 씌우는 비닐 가격에도 영향을 미쳤다. 비닐의 주원료가 에틸렌인데 이를 석유에서 추출하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에틸렌의 톤(t)당 가격은 860달러다. 지난달 20일 에틸렌 가격은 t당 735달러였다.
서울 강동구에서 4년째 세탁소를 운영하는 김춘호(66)씨는 “요새 옷에 씌우는 비닐이 한 박스에 5만원대인데 지난해 이맘때쯤엔 한 박스에 4만원 선이었다”고 전했다.
세탁소 옷걸이에 쓰이는 철도 지난해 가격이 올랐다. 한국광해광업공단에 따르면 철광석 가격은 지난 3일 기준 t당 127.6달러다. 1년 전인 지난해 2월 11일 가격(t당 149.32달러)보다는 낮아졌지만 지난해 철광석 가격이 가장 낮았던 11월 4일(t당 82.42달러)과 비교하면 약 54.8% 뛰었다.
철광석 가격 상승 여파로 세탁소에서 쓰이는 철사 옷걸이 공급가도 덩달아 뛰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조정호(52)씨는 “요새 옷걸이 박스당 가격이 지난해보다 몇천 원가량 높아졌는데 옷걸이 중량은 되레 줄어들었다”고 귀띔했다.
석유와 철광석의 가격이 오른 배경엔 중국의 리오프닝(경기활동 재개)이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봉쇄정책을 풀고 중국 내 제조업과 건설업이 기지개를 켜면서 석유와 철광석 수요 증가가 나타나고 가격 상승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석유수급 차질로 고유가가 지속된 점도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세탁업종이 경기 흐름에 영향을 크게 받는 업종이라는 점도 세탁소 업주들의 한숨을 깊게 만들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세탁업에 뛰어들었다는 정현철(65)씨는 “세탁소가 원래 경기를 많이 탄다”며 “경기가 좋을 땐 비싼 옷들을 세탁하거나 수선 맡기는 이들이 많지만 요새는 와이셔츠를 1번 입고 세탁을 맡길 것을 2번 입고 세탁을 맡긴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가을에 세탁비·수선비를 20%가량 일괄적으로 올렸다”고 했다.
한편 프랜차이즈 세탁소와 무인세탁소의 영업 확장도 동네 세탁소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세탁소의 대표 격인 크린토피아의 직영점·가맹점 수는 지난 2021년 기준 2834개로 2019년(2733개)보다 101개 늘었다. 같은 기간 무인세탁소 브랜드인 월드크리닝의 직영점·가맹점 수는 483개에서 486개로, 위니아24크린샵의 직영점·가맹점 수는 83개에서 103개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