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 A씨는 2017년 5월 직장 근처인 경기 광주시 소재 신축 빌라에 거주 목적으로 1억원의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부동산 임대회사를 운영하는 40대 임대인 B씨는 A씨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받으면 채무를 변제, 빌라에 설정된 담보신탁 등기를 말소해주겠다고 약속했다.

2년 후 전세계약이 끝났지만 A씨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B씨는 A씨 등으로부터 끌어모은 전세보증금을 다른 빌라를 신축하는데 써버리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무자본 갭투자’를 반복하며 세입자들의 돈을 탕진한 것이다.

B씨는 이런 수법으로 2016년부터 2019년 9월까지 총 110명에게 123억원을 편취했다. 피해자 대다수는 주거지가 필요한 무주택 청년과 신혼부부, 노인 등이었다. B씨는 빌라 입주 희망자들에게 이중계약 사실을 숨기거나 담보신탁 등기를 말소해주겠다고 속여 돈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 중에선 전세 자금을 잃어 가정이 깨지고, 가족이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 정문./연합뉴스

부동산 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노인 등을 울리는 전세사기가 뿌리 뽑히지 않고 있다. 수도권 빌라와 오피스텔 1139채를 소유했던 40대 남성이 갑자기 사망, 세입자들이 전세보증금을 돌려 받을 길이 없어진 이른바 ‘빌라왕 사건’의 피해자 중에도 젊은 층이 다수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지난 9월 말부터 11월까지 전세피해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상담사례 687건 중 피해자가 다수이거나 공모가 의심되는 106건에 대해 1차로 경찰청에 수사 의뢰를 했다. 피해액은 171억원 이상이며 피해자는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로 추정되는 30대(50.9%)와 20대(17.9%)가 70%에 육박한다.

◇ 임차인 모르게 바뀐 집주인... 등본 떼봐도 피해 예방 어렵다

요즘 유행하는 ‘무자본 갭투자’ 방식에 연루된 세력은 거래량이 적고 시세 확인이 어려운 신축빌라에 입주하려는 사람들에게 이사비 지원 등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매매가보다 높은 가격에 전세계약을 체결하도록 유도한다.

이후 빌라 소유권을 일명 바지사장이나 페이퍼컴퍼니(명목상의 회사) 등의 법인에게 넘긴 뒤 잠적한다. 받은 보증금으로 또 다른 빌라를 사들여 같은 방식의 사기를 반복한다. 빌라왕으로 알려진 김모씨 역시 62억원의 종합부동세를 체납했을 정도로 경제력이 없어,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노린 배후세력에게 명의를 빌려준 바지사장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임차인은 집주인이 바뀐 것도 모른채 전세계약 만기 시점이 되어서야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전세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계약 시점에 등기부등본으로 근저당권 설정 여부를 확인해도 피해를 예방하기가 어렵다. 사기를 당한 사실을 알고 빌라를 경매에 넘겨도 보증금이 집값보다 높아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을 수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런 형태의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린 인천 미추홀구에서는 2000여 가구가 전세사기를 당했고 피해금액만 2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미추홀구의 한 동짜리 아파트나 빌라에서 건설사와 임대인, 공인중개사, 주택관리업체 등이 조직적으로 전세사기를 벌여온 것이다. 일부 가구는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는 등 피해자들은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 전세사기 피해보전 어려워... B씨 피해자들도 구제 못 받아

전세사기는 피해보전이 어렵다. 피해자가 피해액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전세금 반환 소송이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범인이 재산을 은닉하거나 써버리면 찾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피의자가 법원의 지급명령에도 “돈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변제할 수 없다고 버티면 사실상 다른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법원은 전세사기 피해액을 피해자에 돌려줘야 하는 재산으로 보고 국가 차원에서 몰수하거나 추징보전을 하지 않는다.

B씨 역시 약 4년 간의 재판 결과 이달 초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지만, 추징은 계약금을 부풀린 ‘업(UP) 계약서’로 세입자들의 전세자금 대출 금액을 조작해 업무방해혐의가 적용되는 9억9400만원에 대해서만 적용됐다. 전체 피해액의 10%도 되지 않는 금액이다.

법조계에서는 전세사기 피해를 막기 위한 예방을 강조한다. 부동산 사건을 전문으로 맡는 김예림 법무법인 정향 변호사는 “당한 이후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나홀로아파트나 빌라 주변 시세와 소유자 확인을 잘하고, 보증보험을 가입하고 약관도 잘 살펴봐야한다”면서 “계약이 완벽해도 임대인이 돈을 안주면 해결이 안되는 전세제도가 존속되는 한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