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주상복합건물 ‘가야위드안’에 살고 있는 A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멀쩡하던 전기가 갑자기 끊긴 것이다. A씨는 이 건물의 1층에 있던 관리사무소에 관리비를 내고 있었는데, 작년 4월 갑자기 2층에도 관리사무소가 생기면서 서로 자신에게 관리비를 내라고 요구했다. A씨는 어리둥절한 마음에 원래 관리비를 납부하던 1층 관리사무소에만 관리비를 내고 있었는데, 이달 들어 갑자기 관리비가 미납됐다며 단전이 된 것이다.
신림역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는 주상복합건물 ‘가야위드안’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야위드안은 10층짜리 주상복합건물로 총 243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2008년 분양자를 모집해 2010년 착공했지만 분양까지 10년이 걸렸다. 2014년에 시행사 대표가 비리 혐의로 구속되면서 사업이 표류했기 때문이다.
신탁사인 아시아신탁이 가야위드안 소유권을 확보한 뒤 사업 재개에 나선 뒤에야 가야위드안은 다시 정상궤도에 진입했다. 아시아신탁은 2019년 4월 건물 투자업체인 주영인더스트리(주영)에 1순위 우선수익권을 매도하고 건물 준공과 관리를 맡겼다. 주영은 건물 관리업체인 신라씨앤디(신라)와 마무리 공사 계약을 맺었다. 2020년 7월 건물은 마침내 준공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느 주상복합건물처럼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새로운 문제가 이때부터 시작됐다. 주영과 신라가 서로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갈등이 불거진 것이다. 주영은 신라가 자신들의 동의 없이 상가 일부와 주택에 대해 무단으로 임대를 해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임대인과 임대차계약을 맺을 수 있는 권리는 신탁사로부터 1순위 우선수익권을 사들인 주영에게만 있는데 신라가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주영 측은 “신라 측이 이중계약에 걸리지 않도록 차용증 형식으로 관리비를 연체하지 않는 조건의 보증금(전세금)을 받는 방식을 활용했다”며 “시행사가 아닌 신라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주영은 지난해 4월 신라에 계약 위반으로 건물 관리를 맡겼던 권한 위임을 모두 철회한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반면 신라 측은 주영이 용역비와 공사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면서 유치권을 주장하고 있다. 신라 측 관계자는 “주영 측에서 계약 위반을 주장하는 건 사실이 아니다. 변호사와 법무법인 자문을 받아서 적법하게 임대를 한 것”이라며 “사용 승낙 공증과 소유권 이전 등기를 모두 받았고, 주영 측에서 건물 전 세대를 사용해 수익을 내도 된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양측은 여러 건의 소송을 진행하며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법원의 판단은 지난 9일이다. 서울중앙지법 제51민사부는 주영 측이 신라가 건물을 불법 점거하고 있다며 낸 방해금지가처분 소송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수탁자로서 이 사건 건물의 소유자인 아시아신탁이 주영에 ‘우선수익권자인 채권자 주영인더스트리가 가야위드안에 관한 관리권을 행사하는 것에 이의가 없다’는 내용의 통지를 한 바 있어, 주영은 가야위드안에 관한 관리권이 있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기는 하다”면서도 “주영이 2020년 3월경 신라 측에 건물 관리권을 위임한 사정을 고려해 주영이 가야위드안의 적법한 관리자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주영 측이 신라와 체결한 관리용역계약이 해지됐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본안소송에서 다투라며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문제는 양측이 다투는 과정에서 건물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주영과 신라 측은 서로 용역직원을 동원해 가야위드안 안팎에서 대립했는데 이 과정에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일이 잦았다. A씨가 겪은 단전 소동도 이 과정에서 비롯됐다.
이곳을 관할로 두고 있는 관악경찰서는 TF팀까지 꾸렸다. 용역 직원들이 다툴 때마다 가야위드안과 인근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력이 출동해 양측의 충돌을 막아야 했다. 이달 들어 주영 측이 건물을 점유하면서 경찰도 TF를 해체했다. 다만 갈등의 여지가 남은 만큼 경찰 역시 인근 지구대·파출소를 중심으로 예의주시한다는 입장이다.
더 큰 문제는 가야위드안 입주민 중 상당수가 집을 비워줘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주영 측은 신라와 임대차 계약을 맺은 임대인이 ‘불법점유자’나 ‘무단거주자’라며 집을 비우라고 요구하고 있다. 주영 측에 따르면 243세대 중 절반 정도다.
주영은 가야위드안 곳곳에 불법입주 및 무단거주에 대한 자진 퇴거를 공지하는 공고문과 법적 조치를 알리는 경고문을 붙였다. 주영 측 관계자는 “세입자들이 등기부등본을 떼보지 않고 관리업체 신라 측과 계약을 하는 등 계약상 부주의한 부분까지 업체가 책임질 의무는 없다”며 “법적으로 ‘불법점유’ 및 ‘무단거주’ 상태라, 주민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신라와 입주민들은 정상적인 계약이었던 만큼 집을 비워줄 이유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주영 측이 예고한 6월 말 이후 양측의 물리적 충돌까지 가능한 상황이다.
관할 구청도 이렇다 할 방법은 없는 상황이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집합건물 관리 민원에 만전을 기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면서 “민사소송은 법적 다툼을 해야 할 사안이라 개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상흠 법무법인 우리들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유치권은 변제받지 못한 채권에 대한 담보물권으로 내 권리를 찾기 위해 타인의 물건을 임시로 점유한 것”이라며 “유치권자와 사용대차계약 또는 임대차 계약을 한 것은 권리가 없는 사람과 한 허위계약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주영 측의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면 신라와 계약을 맺은 임차인의 구제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임차인이 신라 측이 건물 관리자라고 믿을 만한 정황이 있었다면 구제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도 나온다. 엄정숙 법도종합법률사무소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민법상 대리 권한을 행사하러 온 상황을 제3자가 믿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서 계약을 한 것이라면 그 계약은 유효하다는 법리적 해석은 가능하다”면서도 “대리위임이더라도 계약상 소유권자와 대리인 관계를 세입자가 재차 확인해야 상당 부분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