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발생 당일 오전, 피의자 최씨가 피해자 부부에게 보낸 살해 협박 문자./휴대전화 캡쳐

지난달 2일 대낮에 부산 북구 구포동의 한 거리에서 모자가 휘두른 흉기에 50대 부부가 숨지는 참혹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부산 구포동 부부 살인사건’으로 불렸고 흉기를 휘두른 30대 남성 A씨와 50대 여성 B씨는 살인죄로 구속 기소됐다. A씨와 B씨는 모자 관계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 사건을 금전 문제로 인한 단순 살인 사건으로 알렸지만, 피해자 유족은 사건 당일 경찰의 안일한 상황 판단으로 부부가 함께 살해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건 당일 A씨와 B씨가 피해자 부부를 죽이겠다고 협박했고, 부부는 이를 경찰에 두 차례나 신고했지만 경찰은 아무런 조치도 없이 현장을 떠났다. 결국 경찰이 떠난 지 5분도 되지 않아 피해자 부부는 변을 당했다. 경찰의 부실 대응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인천 빌라 흉기난동 사건을 연상케 한다.

11일 피해자 유족과 부산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한 지난 3월 2일 오후 3시쯤 피해 여성(아내)은 모자 관계인 50대 여성 B씨와 30대 남성 A씨에게 ‘돈을 달라’는 협박을 받고 있던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아내는 ‘아침부터 모자가 찾아와 남편을 협박한다’ ‘흉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며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과 동행해 현장을 찾았다. 경찰과 동행하는 동안 아내는 남편에게 전화했지만, 매우 흥분한 상태의 B씨가 전화를 받았고 아내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A씨와 B씨의 몸수색을 했고, 흉기가 발견되지 않자 부부와 모자를 분리조치한 후 현장을 떠났다.

그로부터 약 한 시간이 지난 오후 4시 16분쯤 고성이 오가는 등 상황이 급박해지자 아내는 경찰에 다시 출동해 줄 것을 요청했다. 3분 후 경찰은 개인 휴대폰으로 아내에게 전화해 “다시 신고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고, 아내는 “경찰서 가서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경찰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경찰서에서 얘기하는 거랑 길거리에서 얘기하는 게 뭐가 다르냐”고 했다.

이후 현장에 다시 출동한 경찰은 부부에게 “큰 길로 데려다 주겠다”고 했지만 부부가 “오늘 이 얘기(관계)를 정리하고 싶다”며 거절하자 별다른 조치 없이 다시 현장을 떠났다. 경찰이 현장을 떠난 직후인 오후 4시 40분쯤 피해 부부는 당시 현장과 가까운 곳에 거주하던 A씨가 집에서 가져온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유족은 4시 30분부터 35분까지 피해 여성인 아내가 지인과 통화하며 ‘지금 경찰과 함께 있다’고 말한 점으로 미뤄보아 경찰이 현장에서 떠난 지 5분도 안돼 사고가 났다고 보고 있다.

피해자 부부와 A·B씨 모자는 수년 간 알아왔던 지인 관계로 알려졌다. 이들 모자는 지속적으로 피해자 부부에게 금전을 요구했고, 사고 당일 오전에도 B씨는 피해자에게 협박 문자를 보내고 피해자의 직장에도 따라와 소리를 지르며 행패를 부리는 등 위협을 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족은 피해자들이 이들 모자로부터 수년 간 협박을 받아왔고, 사건 당일 현장에서도 B씨가 피해자 부부에게 심한 욕설을 하는 등 모자의 폭력성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경찰이 안일하게 대처했다고 분노하고 있다. 특히 사건 당일 약 두 시간 동안 신고를 두 번이나 했고, “함께 현장에 가달라” “경찰서 가서 얘기하고 싶다”며 경찰에 도움을 명확하게 요청했는데도 경찰이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출동해보니 신고자가 ‘관계 청산을 위해 경찰을 불렀다’는 취지로 말해 민감한 사적관계라 경찰이 개입할 수 없었고, 당시 현장 분위기도 크게 급박하거나 위험해보이지 않아서 돌아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유족은 지난 8일 열린 피의자 신상공개위원회에서 이들 모자의 신상정보를 비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나타냈다. 유족은 “직접 흉기를 휘두른 B씨는 매우 폭력적인 사람”이라며 “2020년 4월쯤 피해자 부부와 이들 모자가 함께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때도 신문지에 싼 칼을 가져왔다”고 했다. 북부경찰서 측은 신상공개가 되려면 범죄의 잔혹성, 피의자가 미성년자가 아닌 경우, 공공이익 부합 여부 등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데 이 사건의 경우 피의자의 신상공개가 공공이익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불분명해 비공개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유족은 사건이 발생한 구포동 골목이 안심길로 지정되어 있음에도 대낮에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것을 지적하고 있다. 안심길은 범죄 취약 지역에 조명, 거울 등을 설치해 시민의 불안감을 최소화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조성한 골목길이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에서는 2회 이상 출동을 했을 땐 상황에 대한 위험성 평가를 종합적이고 엄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이 사건의 경우 신고자가 ‘경찰서에 가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에 동행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유사한 사건들에서 경찰이 두 번째로 현장에서 떠났을 때 중대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경찰이 일상적인 이웃 간 다툼 수준으로만 판단해 이런 안타까운 사태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