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형사가 감에 의존해 범인을 찾는 시대는 지났다. ‘살인의 추억’ 박두만 형사 대신 ‘시그널’ 박해영 경위가 우리에게 더 익숙한 경찰의 모습이다. 첨단기술을 활용해 범인을 잡는 건 드라마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경찰이 일선 현장에서 어떤 첨단 기술을 활용해 범죄를 예방하고 범인을 잡는지 들여다봤다.

지난 11일 오후 2시 50분쯤 서울 송파구 모 주택에 거주하던 50대 남성 A씨 모습이 며칠 동안 보이지 않는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변사사건이 유력하다는 판단에 따라 서울경찰청 소속 김진영 검시조사관과 서울 송파경찰서 경찰관이 현장으로 출동했다.

A씨는 집 안 침대에서 이불을 덮은 채 사망한 상태였다. 김 검시관은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보호복을 급하게 입은 뒤 챙겨온 시약 등 도구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보일러와 TV가 틀어진 상태였고, 빈 컵라면이 싱크대 위에 놓여 있었다. A씨 휴대전화에서 유서로 볼만한 문자도 발견됐다. 가족은 없었다.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에서 발생한 사망사건 현장에서 김진영 검시조사관이 보호복을 입고 검시를 준비하고 있다./윤예원 기자

김 검시관은 사체 옷을 벗긴 뒤 외상이나 극단적 선택을 한 흔적이 있는지 찾아봤으나 특이사항은 없었다. 병사가 유력했지만, 유서 추정 문자 때문에 곧바로 판단할 수는 없었다. 김 검시관은 고민 끝에 정밀 부검을 진행하기로 했다.

검시관은 사망 사건 현장으로 출동, 변사자 검시를 통해 사망 원인 등 1차 판단을 내리는 일을 한다. 영안실 안에서 흰 가운을 입고 냉동된 사체를 부검하는 부검의와는 다르다. 부검의가 사체 내부에 대한 검시를 한다면, 검시관은 사체 외부를 검시하는 것이다.

검시관의 판단에 따라 수사 방향도 결정된다. 검시관이 현장에서 타살로 결론을 내리면 경찰 수사도 타살에 초점이 맞춰져 진행된다.

검시관은 단순히 사체에 외상 흔적 등을 찾는 일만 하지 않는다. 사망자 가족·이웃·친구 등과 현장 면담을 통해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사체가 발견된 장소 주변에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 종합적인 판단을 내린다. 유족들에게 사망 원인 등을 설명하는 것도 검시관 몫이다.

일반 경찰관은 사체에 대한 전문 분석 능력이 부족한 만큼 검시관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사체가 썩으면서 변색된 것인지 폭행 피해 흔적인지를 현장에서 분석해 구분하는 것은 검시관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사망사건 현장을 총 지휘하는 권한을 검시관에 주기도 한다.

검시관 중요성이 날로 커지면서 관련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사체에서 발견된 구더기의 항문 주름 등을 정밀 관찰해 구더기가 언제 발생했는지를 판단, 사망 시각을 추정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최근 2년 사이에는 사체 변색 정도에 따라 사망 추정 시각을 알아낼 수도 있게 됐다. 실제 구더기를 통한 사망시각 추정은 ‘인도네시아 한인 타살 의혹 사건’에서 활용되기도 했다.

다만 검시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확보하기 위한 인프라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검시관들은 서울경찰청 소속으로 일선 경찰서에 파견 형태로 근무하고 있다. 김 검시관의 경우 3교대로 일하며 혼자서 송파·수서·강동경찰서에 접수되는 모든 사망 사건에 대응하고 있다.

관련 법·제도도 아직 부족해 검시관 활동 범위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경찰청 과학수사 기본규칙에는 검시관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만 기재돼 있을 뿐, 검시관 소속과 의무·역할도 제대로 규정돼 있지 않다.

또 현장에서 사체를 검시하기 위한 채혈 등이 의료행위인지, 증거물 수집 행위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법률 규정은 물론 역할 범위 등도 규정돼 있는 미국과는 차이가 크다.

김 검시관은 “검시관은 음지에서 일을 하고 잘해야 본전인 직업”이라며 “검시관이 더 가치를 가지기 위해 검시조사법 등을 제정해 검시관의 역할과 활동을 보호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