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형사가 감에 의존해 범인을 찾는 시대는 지났다. ‘살인의 추억’ 박두만 형사 대신 ‘시그널’ 박해영 경위가 우리에게 더 익숙한 경찰의 모습이다. 첨단기술을 활용해 범인을 잡는 건 드라마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경찰이 일선 현장에서 어떤 첨단 기술을 활용해 범죄를 예방하고 범인을 잡는지 들여다봤다.

날치기, 소매치기, 들치기를 하는 범죄자를 ‘치기범’으로 부른다.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재빠르게 피해자 가방·지갑 등을 낚아 달아나는 범행이다.

최근에는 치기범을 보기가 힘들어졌다고 하지만, 10여년 전인 2012년만 해도 치기범 검거율은 34.6%에 그쳤다. 치기범 3명 중 2명은 잡지 못한 것이다.

경찰은 치기범 신고가 접수되면 피의자 예상 도주로를 중심으로 경력과 순찰차 등을 투입하는 ‘긴급배치’에 들어간다. 그러나 범행이 순식간에 벌어지는 데다 피의자의 인상착의를 파악하기 힘들어 검거가 어려웠다. 경찰 사이에서는 ‘치기범은 48시간 이내 잡지 못하면 사실상 어렵다’는 인식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치기범 검거율이 2015년을 기점으로 비약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61.2%까지 올랐다. 지금도 50%후반대를 유지한다. 검거율이 오르다보니 치기범은 자연스럽게 모습을 감췄다.

최근 10년 소매치기·날치기·들치기 등 치기범 검거율

잡기 힘들다던 치기범 검거율이 어째서 갑자기 오른 걸까. 경찰과 전문가들은 폐쇄회로(CC)TV와 차량 블랙박스를 일등공신으로 꼽는다. 전국 골목골목 CCTV가 설치되고 차량마다 블랙박스가 달리면서 경찰의 눈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영상 화질을 자동으로 개선하는 인공지능(AI)까지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어 정확하고 효율적인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CCTV 10년 만에 100만대 늘었다… 치기범 검거 일등공신

전문가들은 치기범 검거율 상승이 CCTV 덕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곳곳에 설치된 CCTV를 통해 피의자 동선을 확인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단서를 포착해 피의자 신분을 특정하는 일이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30만9227대였던 CCTV는 지난해 4배가 넘는 133만6653대로 늘었다. 거의 매년 두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차량 블랙박스 설치율도 국내는 거의 9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10~20% 수준인 다른 선진국에 비해 차량 블랙박스를 통한 증거 수집도 쉬운 환경이다.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도 황시목 검사가 골목에 주차된 택시의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범죄를 해결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곽대경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최근에는 CCTV 등 증거자료와 함께 신고하는 경우도 늘어 경찰 입장에서는 수사가 수월해졌다”며 “범인 윤곽을 좁히고 용의자를 체포하는 일련의 과정이 이전보다 빠른 시간 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어 검거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최근 10년 동안 전국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숫자

◇저화질로 찍혀도 문제 없다… AI로 노이즈 없애서 분석까지

범행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확보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야간이나 사각지대에서 찍히거나 저화질 영상인 경우에는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확신하기 힘들 때가 많다. 법정에서 증거로 쓰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AI를 통한 자동 화질 개선 기술이 등장하면서 이런 문제도 조금씩 해결되고 있다. AI는 고화질 영상과 저화질 영상을 비교·분석해 스스로 학습한다. 저화질이 고화질로 향상될 때 어떤 부분이 어떻게 변하는 지 인식했다가 실제 저화질 영상이 입력되면 그간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고화질로 개선해 주는 것이다.

흔들린 영상을 개선하는 ‘디블러링’, 영상 내 노이즈를 없애주는 ‘디노이즈’ 등 각종 알고리즘뿐만 아니라 위변조 이미지 감정, 동일인 식별과 같은 기술도 향상되고 있다.

황민구 법영상분석연구소장은 “과거에는 피의자 신장을 계측할 때 CCTV 현장에 가서 비슷한 신장을 세워보고 찾았다”며 “요즘에는 이미지만 있으면 복원 기법이 있기 때문에 현장을 재구성한 후에 이미지 속 신장을 특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화질 개선 기술을 통해 차량번호를 식별한 사례 /법영상분석연구소 제공

실제 영상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8년 만에 억울함을 푼 경우도 있다. 박모씨는 2009년 6월 충북 충주의 한 도로에서 음주단속 과정에서 박모 경장과 말다툼을 벌였다. 돌연 박 경장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박 경장은 박씨가 자신의 팔을 꺾었다고 주장했고, 박씨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했다.

박씨는 벌금 200만원에 약식기소 됐으나 팔을 비틀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1·2심 재판부는 모두 유죄를 선고했고, 대법원도 원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며 형을 확정했다. 당시 경찰은 박씨가 박 경장 팔을 비튼 것으로 보이는 동영상을 증거로 제시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경찰이 제시한 동영상 화질을 개선하는 기술이 나오면서 반전이 생겼다. 밤에 찍힌 영상을 밝게 바꿔보니 어둠 속에 있었던 박씨의 팔을 식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박씨의 팔은 박 경장을 향하지 않았고, 팔을 비틀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 있지도 않았다. 박씨는 재심을 신청했고 2017년 11월 무죄를 선고 받았다.

화질 개선 처리가 된 후 사진. 어둠 속에 보이지 않던 박씨 팔이 새롭게 확인됐다. /법영상분석연구소 제공

새로운 영상 분석 기술을 다룬 논문은 지금도 매일 같이 쏟아지고 있다. 다만 현장에서는 기술의 발전 속도를 전문 인력 양성 속도가 따라잡지 못하는 건 한계라고 말한다. 영상 분석 기술이 발전해도 이걸 제대로 다룰 인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황 소장은 “영상 처리 프로그램 안에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100개가 넘는다”며 “누가 더 능숙하고 사건 경험을 많이 했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술이나 프로그램은 영상처리를 도와줄 뿐 어쨌든 영상분석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며 “대학교 등에서 법영상을 연구할 수 있게끔 투자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경찰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영상 분석 결과의 신뢰성 향상을 위해 17개 시도경찰청에서 영상분석관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영상 분석 건수는 1078건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