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제주시 해안동에서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김용구(55)씨는 지난 21일 “염소가 있으니까 산에서 들개가 계속 내려와서 결국 염소는 못 키우게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애견인’으로서 매일 같이 동네 떠돌이개들의 밥을 챙겨주고 있는 김씨였지만, 밤마다 염소 울타리를 습격하는 들개들이 야속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염소들이 뛰어놀았다던 울타리 안은 잡초만 무성했다.
◇ 먹이 찾아 산기슭 ‘어슬렁’… 축사까지 습격하는 들개떼
최근 제주 일대에서 들개로 인한 피해가 번지고 있다. 주로 떠돌이개로 태어나 산에서 무리지어 사는 들개들이 닭이나 꿩, 염소 같은 작은 동물뿐만 아니라 축사에 있는 송아지와 망아지까지 물어 죽이면서 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제주시 금악리 축산단지에서 소를 키우고 있는 박준희(60·가명)씨는 1년째 축사에서 밤을 지새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쯤 들개 떼가 박씨의 축사를 습격해 송아지 네 마리를 물어 죽인 뒤로는 마음이 불안하다는 이유에서다.
박씨는 “그 때 이후로 24시간 축사에 음악이나 라디오를 틀어놓고 입구마다 개를 묶어뒀다”며 “밤에도 불을 다 켜두고 축사에서 잔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 직후 시청에서 축사에 개 포획 틀을 놔줬는데 열하루 동안 들개가 매일 한 마리씩 잡혔다”며 “그 중 절반 정도는 늑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사납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박씨는 “산양리에 사는 지인도 얼마 전에 축사에 들개떼가 들어 송아리 두 마리를 잃었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같은 날 오전 11시 30분쯤 해안동 산중턱에서 만난 강봉호(56)씨도 “진돗개 크기의 들개들을 하루에 스무 마리는 족히 본다”고 말했다. 벌초 대행업을 한다는 강씨는 “특히 공동묘지가 있는 산에는 사람들이 제사 음식을 가지고 올라오니까, 음식 냄새를 맡은 개들이 대낮에도 어슬렁거릴 때가 많다”며 “오늘 오전에도 열 마리쯤은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시에서 묘지 조성 일을 하고 있는 강영호씨도 “산에서 일을 하다 보면 서너 마리씩 몰려 다니는 개떼를 자주 보는데, 꿩이나 노루도 잡아먹는 개들이라 그런지 혼자서 마주치면 무섭다”며 “주로 인적 드문 밭에 있는 창고용 컨테이너 밑에 굴을 파서 살거나 산 속 깊은 곳에 산다”고 했다.
제주에서는 들개로 인한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제주시에 따르면 지난 2018년 닭 156마리, 송아지 1마리, 거위 3마리, 오리 117마리, 흑염소 3마리가 들개에게 공격받아 폐사했다. 2019년엔 닭 483마리, 기러기 50마리가, 지난해엔 닭 120마리, 송아지 5마리, 한우 4마리, 망아지 1마리가 개에 물려 죽었다.
제주소방본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119 구조대가 주민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포획한 들개 수는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2018년엔 650마리, 이듬해엔 748마리, 지난해엔 총 911마리가 잡혔다. 올해는 1월부터 4월까지 총 299마리의 들개가 소방 구조대에 포획됐다.
◇ “들개의 시작은 ‘마당개’… 목줄 풀어 키우는 문화 영향 커”
제주에 유독 들개 문제가 많은 이유로는 ‘마당개’가 지적됐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아파트보다는 단독주택이 많은 제주 지역 특성상 집 지키는 용도로 개를 데려와 마당이나 동네에 풀어놓고 키우는 경우가 많다”며 “마당개들이 자유롭게 번식하고 새끼를 낳으면서 집 없는 떠들이개가 늘고, 이 개들이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채 야생에서 자라면 들개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물자유연대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정부 동물보호시스템(APMS)에 등록된 유기동물 수를 분석한 결과, 인구 1만명당 유기동물 발생 건수가 가장 높은 곳은 제주(414건)로 서울(40건)의 10배를 넘겼고, 두 번째로 높은 전북(171건)에 비해서도 2.4배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APMS에 등록된 제주 유기견 중엔 소위 ‘바둑이’와 ‘누렁이’ 등으로 불리는 비(非)품종견이 대다수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지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 동안 APMS에 등록한 유기견 중 비품종견은 총 2만3039마리로 품종견(2743마리)의 7.8배에 달했다. 제주를 포함한 전국의 품종견 대비 비품종견 두수는 평균 1.8배로 제주의 4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조 대표는 “관광지에 떠돌이 품종견이 있는 경우 관광객에 의한 유기견으로 볼 수 있지만, 제주 떠돌이개는 대부분이 누렁이, 백구, 바둑이 같은 비품종견”이라며 “이는 유기나 유실에 따른 것이 아닌 자체적으로 생겨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바둑이’ ‘누렁이’가 차지한 제주 동물보호센터
실제로 제주 동물보호센터에서 보호 중인 개체 중엔 중형견 이상의 비품종견이 대다수였다. 시청이나 소방이 포획한 들개나 떠돌이개, 유기견 등은 이곳에 입소해 보호된다. 센터 관계자는 “입소하는 개들 중 90% 이상이 성견 기준 15kg은 나가는 중·대형 ‘믹스견’”이라며 “가정집에서 많이 키우는 작은 개나 품종견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제주도 전체에 동물보호센터는 이곳이 유일한 상황에서 떠돌이개와 들개가 끊임없이 밀려드는 탓에 그 중 절반은 안락사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관계자는 “적정 보호 두수가 258마리인데 오늘(21일) 기준으로 벌써 300마리가 넘어 과밀한 상태”라며 “작년에는 총 8100마리가 들어왔고, 많은 날에는 하루에 80마리가 입소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개체 수가 많아져 밀집도가 높아질수록 질병 감염 위험도 커진다”며 “적절한 보호 환경을 갖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매주 안락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물자유연대 조사에 따르면 전국 시·도 보호센터에서 유기동물이 자연사하거나 안락사되는 비율은 제주가 76.2%로 가장 높았다.
전문가들은 더이상의 들개 번식을 막으려면 근본적으로 반려 문화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중성화 되지 않은 개들이 집 밖에서 생활하면서 번식하고 떠돌이개를 낳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인 만큼 지자체 등이 반려견 중성화를 권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개에 대해 등록제를 시행해 관리하면서 방치되거나 함부로 번식하는 일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