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농장에서 탈출한 유기견들이 사람을 공격해 다치게 하거나, 사망케 하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농장에서 탈출한 개들은 장기간 비좁은 우리에 갇혀 학대를 받아 흉포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불법 개농장이 잇따른 개 물림 사고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7일 마포구 공덕동의 한 동물병원에 입원 중인 유자(왼쪽)와 벨라는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자 벽 쪽으로 바짝 붙었다. /김민정 기자

지난 17일 찾은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동물병원에서는 불법 개농장에서 장기간 방치된 개들이 얼마나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적대시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충북 음성의 한 개농장에서 구조된 ‘유자’와 ‘벨라’라는 이름의 이 개들은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자 꼬리를 잔뜩 말고 벽 쪽으로 바짝 몸을 밀착했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두 마리는 서로의 품을 파고들면서 한껏 불안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 개들이 구조된 개농장에서는 발버둥치는 개를 목을 매달아 죽이고, 토치로 사체를 불태우는 등의 불법 행위가 버젓이 일어났다. 동물구조단체 위액트가 지난 14일 구조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개 한 마리가 잔인하게 도살돼 솥 안에서 끓여지고 있었다.

개를 도살하는 모든 과정은 유자와 벨라가 있는 뜬장(공중에 떠 있는 우리) 뒤편에서 벌어졌다. 구조된 개들은 다른 개들이 잔인하게 도살되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함형선 위액트 대표는 “눈앞에서 다른 개의 죽음을 목격한 개들은 인간을 향한 적개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구조한 개들은 장기간 뜬장 속에 갇혀 살아 사회화가 전혀 돼 있지 않았고, 구조를 위해 목줄을 채우려 하면 이빨을 드러내며 경계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불법 개농장에서 탈출한 개들이 생존을 위해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인간을 공격하는 들개의 습성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물권행동 카라 역시 남양주 사고견과 같은 떠돌이 방치견, 들개들이 발견되는 이유로 ▲만연한 개농장의 방치 사육 ▲재개발 지역에서의 유기 ▲일상적인 마당개 방치 사육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지난달 남양주에서 일어난 개 물림 사고 이후 인근 개농장을 찾았던 카라 관계자는 “개들이 수용된 사육장은 지옥과 같았다”며 “좁은 뜬장 안은 오물과 배설물이 뒤섞여 겹겹이 쌓여 있었고, 밥그릇엔 음식물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다”고 전했다.

불법 개농장에서 사육되는 개들 대부분은 유기견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인에게 버림받아 떠도는 개들이 불법으로 포획돼 열악한 시설 안에서 대부분 식용으로 사육되는 것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발표한 ’2020년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구조되거나 보호된 유실·유기동물은 13만401마리에 이른다. 전국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280개 동물보호센터에서만 파악된 수치다. 박현선 위액트 입양 담당자는 “불법 개농장에서 유럽에서 들어온 품종견들도 많이 발견했다”고 말했다.

위액트가 지난 2019년 경기 하남에서 구조한 개들도 인근 개농장에서 탈출한 뒤 무리 지어 생활하던 들개였다. 이 개들은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서식하면서 새끼까지 낳아 수십마리 수준의 무리를 이뤘다.

위액트 관계자는 “구조 당시 1~2개월 정도의 새끼도 있었는데, 사람들이 손을 대면 찢어질 정도로 물었다”면서 “그 상태로 계속 자랄 경우 야생성이 유지되면서 사람들과 지내기 어려운 들개가 된다”고 말했다.

동물구조단체 위액트가 구조한 유기견의 엑스레이 사진. 떠돌아 다니던 개가 저수지에서 방치된 미끼를 통째로 삼켜 낚싯바늘이 뱃 속에 들어있는 모습. /위액트 제공

함형선 위액트 대표는 “기르던 개를 함부로 버리거나 학대하는 행위에 대해 엄벌하지 않을 경우 도심을 떠도는 개들에 의한 사고는 계속 늘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전국의 불법 개농장에 대한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반려동물 유기에 대한 처벌 법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