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김모(43)씨는 최근 고등학교 화학교사가 감기약으로 마약을 만드는 내용의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를 본 뒤 실제로 가능한지 인터넷에서 검색을 했다가 놀랐다고 했다. 감기약을 사들여 마약을 제조한 실제 사례들이 국내에도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원 김모(34)씨도 최근 우연히 인터넷에서 성냥과 자갈을 이용해 폭발물을 만드는 영상물을 보고 아이들이 따라할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최모(31)씨 역시 베이킹소다와 식초를 이용해 폭발 실험을 하는 영상을 보고 실생활에서 사람들이 흉내를 내면 위험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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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마약이나 폭발물을 제조하는 방법이 인터넷 상에서 공유되면서 모방 범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터넷 발달로 마약이나 폭발물 제조에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쉬워지면서, 범죄조직과 아무련 관련이 없는 일반인들까지도 범죄에 가담하기 쉬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약관련 전문가들은 우리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감기약에는 필로폰 원료 물질인 ‘슈도에페드린’이 들어있다고 말한다. 감기약 1통에는 필로폰 12그램 정도를 만들 수 있는 슈도에페드린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드라마나 유튜브 등을 통해 감기약으로 마약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모방 범죄들이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8년 장인과 사위가 함께 감기약을 대량으로 사들여 마약을 만들다 경찰에 적발된 사례가 있다. 이들은 감기약 7200정을 사들여 백색가루 660g을 제조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는 2만2000명이 한 번에 투약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다만, 이들이 추출 방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조사 결과 백색가루에서 필로폰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2017년에는 서울의 한 대학원생들이 연구실에서 감기약과 각종 화학약품을 사용해 시가 390만원 상당의 필로폰(13g)을 제조한 혐의로 구속된 적도 있었다. 이들은 인터넷 사이트 등을 보고 필로폰 제조법을 터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폭발물 제조 모방범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본인이 스토킹을 하던 여성을 기다리다 사제폭발물을 터트린 혐의로 체포된 20대 남성 A씨에게 법원이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한 바 있다. 경찰조사 결과 A씨는 인터넷을 통해 폭발물 제조 방법을 습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의 모방범죄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서울에서 한 중학생이 교실에서 부탄가스 폭탄을 터뜨린 뒤 이를 인터넷에 중계한 사건이 있었다. 2017년에는 대학원생이 교수 연구실 앞에 사제폭발물인 ‘텀블러폭탄’을 설치, 교수에게 부상을 입히는 사고를 일으킨 혐의로 체포됐다. 2019년에는 보호관찰을 받고 있던 한 고등학생이 인터넷을 보고 사제폭탄을 만들었다가 보호관찰소의 불시점검 때 폭발물 소지가 적발되기도 했다.

보호관찰소가 보호관찰을 받고 있던 고등학생의 집을 불시점검을 했다가 발견한 사제폭탄. /조선DB

전문가들은 마약이나 폭탄 원료가 될 수 있는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점도 문제지만, 제조법을 알려주는 웹사이트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을 경우 일반인들의 모방범죄를 제대로 막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한다.해외에 서버가 있으면 제조법 유포자의 신원을 확인하거나 경찰이 검거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또 유포자의 국적이 외국인인 경우에는 국내법을 적용한 처벌 자체가 불가능하다. 최근에는 인터넷이나 해외 소셜네트워크(SNS) 등에서 ‘대마재배법'까지 공유되고 있지만, 경찰은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마약이나 폭발물 제조법 등 공공에 해가 되는 정보는 스스로 걸러낼 수 있도록 개개인의 정보 판단 능력을 높이기 위한 사회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유해사이트에 대한 사회적 감시와 관리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해외에 서버를 둔 마약, 폭발물 제조법 공유 사이트에 대한 접근도 차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