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만난 70대 주부 신모씨는 “요즘 믿고 먹을 수 있는 게 없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신씨는 “중국은 김치 뿐만 아니라 다른 먹거리에 대해서도 흉흉한 소문이 돌더라”라면서 “일본산도 중국산도 식탁에 올리기 꺼려진다. 주머니만 더 얇아지게 생겼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과 일본에서 촉발된 논란들로 인해 시민들의 식탁이 위협 받고 있다. 중국 ‘알몸 김치’ 파동에 이어 일본이 바다에 원전 오염수를 방류하기로 결정하면서 중국산 김치와 수산물 기피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산 김치 불안한데… 원산지 속여 상차림 내는 음식점도

지난 3월 논란이 된 중국의 배추 절임 영상.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알몸 김치 파동은 중국 소셜미디어인 웨이보에 한 네티즌이 중국의 한 공장에서 배추를 절이는 모습을 공개한 게시물이 국내로 번지면서 시작됐다. 공개된 영상에는 커다란 구덩이로 보이는 곳에 상의를 벗은 남성이 들어가 구정물에 절여진 배추를 녹슨 굴삭기에 옮기는 장면이 담겼다.

같은 달 11일 중국 정부는 “수출용 김치에 들어가는 배추가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고 해명했다. 식품의약안전처도 해당 영상은 국내에서 소비되는 중국산 김치와 연관성이 낮을 것으로 판단했지만, ‘알몸 김치’에 대한 충격은 중국산 김치 기피 현상으로 이어졌다.

직장인 조영경(25)씨는 알몸 김치 동영상을 보고 “충격적이었다”며 “그 뒤로는 회사 구내식당에서 김치를 안 먹게 됐다. 식당에 가서도 손수 담근 김치가 아니면 손도 안 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산보다 5배 이상 저렴한 가격 때문에 대부분의 음식점이 중국산 김치를 쓰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산 김치 불매 움직임이 일자, 일부 식당에선 중국산 김치의 원산지를 국내산으로 속여 식탁에 올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서울 광진구 한 음식점의 원산지 표시판. 김치 원산지에 ‘조금 차이나(중국)’라고 적혀 있다. /독자 제공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최근 전국 3000여곳의 음식점을 대상으로 긴급 단속을 벌인 결과, 130곳이 김치 원산지를 허위로 기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산 김치만 사용합니다’라고 표기하고 중국산 배추김치와 섞어 사용한 음식점도 있었고, 중국산 배추김치를 씻어 국내산 백김치로 속인 음식점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총 2139톤의 중국산 김치가 국내산으로 둔갑돼 식탁에 올랐다.

초등학생, 중학생 아이를 키우고 있는 신정아(43)씨는 “온갖 논란들이 많아서 가격이 비싸더라도 국산 재료만 쓰는 곳을 찾는 편”이라면서 “그런데 원산지를 속이는 곳도 있다고 하니 어디 가서 뭘 사 먹기가 꺼려진다”고 말했다.

◇ “中 김치가 한국 점령” 주장… 국내선 ‘노노 차이나’ 움직임

지난 21일 중국 소셜미디어에 중국 김치에 관한 해시태그 키워드가 올라와 있다. /웨이보 캡처

최근에는 중국이 김치 종주국을 자처하고 나서면서 중국산 음식을 불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21일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微博)’에 ‘중국 파오차이’를 검색하자 ‘중국 김치가 한국을 점령했다’ ‘한국 정부는 중국 김치의 국제표준 등록에 대해 응답하라’ ‘중국 김치가 한국을 무너뜨렸다’는 해시태그 키워드가 검색됐다. 해당 키워드의 누적 조회수는 7000만회를 뛰어넘었고 총 1만여개의 게시글이 올라와 있었다.

이에 대학생 조하영(23)씨는 “중국산 식품의 위생에 대한 불신이 커 원래도 많이 소비하지 않았지만,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을 알고 나서는 더더욱 소비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최모(25)씨도 “마트에서 무심코 중국산 식재료나 가공식품을 집었다가도 각종 논란들이 떠올라 내려놓게 되더라”라며 “중국산 식품들은 소비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본마저 “원전 오염수 방류하겠다”… 텅 빈 수산시장

중국과의 ‘김치 갈등’에 이어 일본까지 지난 13일 태평양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방류하겠다고 밝히자 시민들은 “일본산 수산물은 절대 먹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21일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 일본산 줄돔, 감성돔, 능성어가 전시돼 있다. /윤예원 인턴기자

주부 김수정(56)씨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되도록이면 국내산으로 먹어오다가 시간이 지나 점차 잊고 있었는데, 다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면서 “앞으로 다시 고삐를 죌 것”이라고 말했다. 신정아씨도 “일본산 생산은 절대 사진 않는다. 앞으로도 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불매 움직임의 영향은 시장 상인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난 21일 오후 찾은 서울 노량진 시장은 수조에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릴 뿐 적막했다. 2시간 동안 수산물을 사가는 손님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고, 시장 상인들도 각자 자리에 앉아 휴대전화를 응시할 뿐이었다. 바쁘게 생선을 손질하거나 가게를 홍보하고 가격을 흥정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곳 상인 변윤섭(48)씨는 “소비자들이 일본산 수산물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것을 상인으로서 매일 체감하고 있다. 애초에 손님도 얼마 없지만, 그나마도 일본산이라고 표기된 생선에는 눈길도 안 준다”며 “오염수가 아직 방류되지 않았고 시장에 들어오는 수산물들은 이미 검역을 마친 상태인데도 영 팔리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변씨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도 타격이 심했는데, 그때와 같은 악몽이 반복될까 두렵다”고 했다.

인근 상인 김모(52)씨도 “일본산 말고 다른 건 없냐고 손님들이 물어보신다”며 “‘아직 일본산도 괜찮다' ‘검사도 마쳤다’고 답하지만 소용이 없어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코로나 여파에 일본산 수산물 기피까지 겹쳐 매출이 많이 줄었다”고 덧붙였다.

◇일본산 수산물 연간 3만톤 수입… 정부는 “원산지 관리·감독 강화할 것”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일본에서 국내로 수입되는 수산물은 연간 3만톤가량이다. 해수부는 이 가운데 참돔, 방어, 가리비 등 소비자 민감도가 높고 원산지 둔갑 우려가 있는 품목 17종에 대해 수입부터 소매까지 유통 이력을 관리 중이다.

식약처는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부터 후쿠시마 인근 8개 현의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수입되는 일본산 수산물에 대해선 세슘, 요오드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일본산 수산물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의 적막한 모습. /윤예원 인턴기자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김강림 식약처장은 지난 19일 수입 수산물 방사능 검사 현장을 찾아 “원칙과 절차에 따라 철저하게 검사해달라”고 당부했다.

해수부는 원산지 표시 특별점검에 들어갔다. 해수부는 지난 22일부터 지방자치단체, 해양경찰청 등과 함께 최근 한 달 이내에 수입 이력이 있는 수산물에 대해 원산지 표시 위반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수입수산물 유통이력관리시스템에 등록된 수산물 수입업체와 유통·판매업체, 음식점 등 7428개소가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