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재사용’ 논란이 매섭다. 지난 23일, 어묵탕 육수 재탕이 적발된 부산시 중구의 술집 인근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한산했다. /박지영 기자

지난 23일 오전 11시 부산시 중구 남포동의 먹자 골목. 손님을 찾는 듯 바깥을 기웃거리던 백발의 한 식당 주인은 이내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한두 명의 사람만 바쁘게 종종걸음을 치며 거리를 지나갔다. 남포동의 목 좋은 건물 1층 자리들에는 ‘임대 문의’가 씌여진 종이들만 붙어 펄럭였다.

술집, 밀면, 회국수집 등 노포 맛집이 많아 ‘맛집 골목’으로 유명한 이곳은 부산에서도 손꼽히는 번화가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와 최근 음식 재사용 논란이 불거지면서 손님들 발길이 뚝 끊겼다.

최근 음식 재사용 논란에 불을 지핀 곳은 이 골목에 있는 한 술집이다. 60년 업력을 자랑하는 이 식당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어묵탕 육수를 재사용하는 모습을 봤다”는 게시글이 올라오며 문제가 됐다.

게시자는 “뒷자리 손님들이 먹던 어묵탕을 데워달라고 하자 먹던 걸 그대로 육수통에서 토렴(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데우는 방법)해서 데웠다”며 “혹시나해서 우리 것도 데워달라고 하자 우리 음식도 육수통에 그대로 국물을 부어 토렴했다”고 썼다.

지난 3월에는 부산시 동구 범일동의 한 돼지국밥 식당에서 깍두기를 재사용하는 모습이 들켜 문제가 됐다. 아프리카TV BJ 겸 유명 유튜버가 자신의 고모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개인 방송을 하던 중, 손님상에 올랐던 깍두기를 다시 모으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 식당 역시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15일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음식물을 재사용하게 되면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제57조에 의거해 처벌받는다. 1차로 적발되면 15일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지만 이후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 행정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어묵탕 육수 재탕’으로 논란이 된 술집을 가보니 불이 꺼진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행정 처분 공문이나 사과문은 붙어 있지 않았다.

깍두기를 재사용했던 부산시 동구 범일동의 한 돼지국밥집은 영업을 재개했다. 해당 가게는 영업정지 15일 행정 처분이 끝나 다시 장사를 시작했다. 음식 재사용 논란 이후 위생에 신경 쓴 티가 났다. 이른 점심시간이었지만 이미 두 테이블이 차있었다.

“김치 더 드릴까요? 아 개인 집게는 있으시네.”

국밥을 주문하니 국밥, 공기밥과 함께 빈 반찬 그릇 세 개가 나왔다. 직원은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김치통과 개인 집게를 가져다주며 직접 먹을 만큼 덜어 먹으란 얘기를 했다. 새우젓, 막장 등도 작은 반찬통에서 직접 덜어먹을 수 있게 해놓은 상태였다.

◇부산시 남포동 먹자골목…‘음식 재사용’ 논란에 악영향

부산시 남포동의 문제가 된 술집 인근에서 간이 식당을 운영하는 김다언(61)씨는 “골목 자체가 조용해졌다”며 했다. 김씨는 “우리 가게를 다녀가는 손님들이 어묵탕 재활용 얘기를 하며 불쾌하다고 말하고 가더라”며 “얼마 전까지 행정 처분 안내문이 식당 문에 붙어 있었는데 오늘은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인근에 위치한 회국수집에서 일하는 종업원들 역시 음식 재사용 논란에 대해 알고 있었다. 여러 식당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는 이모(60)씨는 “요즘은 어느 식당이든 재활용을 하면 큰일나는 분위기”라며 “코로나19 문제도 있고 예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는데 대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같은 가게에서 일하는 종업원 박모(61)씨 역시 “다른 가게들도 댓글 같은 걸로 피해를 많이 봤다”며 “장사하는 입장에서 안타깝기도 하고 긴장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씨는 “하루하루 버티는 것도 힘든 마당에 이번 일이 커져서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 발길이 끊겨 힘들다”며 “주변에 다른 가게들은 문을 한동안 닫아야 하나 고민도 하더라”고 말했다.

근처 밀면집에서 주방장으로 일하는 김모씨 역시 “요즘 대부분 식당들은 깨끗하고 청결하게 주방을 유지한다”며 “안 그래도 손님이 없어 힘들다”고 푸념했다.

▲지난 3월 깍두기 재활용 논란이 불거진 돼지국밥집은 손님이 직접 반찬을 덜어먹을 수 있도록 개인 접시와 집게를 가져다 줬다. /박지영 기자

◇”안 그래도 손님 없는데” 소상공인은 괴롭다

몇몇 식당의 ‘일탈’은 외식 거부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 성동구에 거주 중인 대학원생 박민영(26)씨는 “먹다 남긴 잔반을 다시 쓰는 식당이 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찝찝해진다”며 “안 그래도 코로나19 때문에 민감할 수 밖에 없어 요즘은 집에서 밥을 해먹는다”고 말했다.

IT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홍모(26)씨는 “예전에 한 설렁탕집에서 김치를 다시 재활용하는 모습을 봤다”며 “그 뒤로는 먹다 남은 잔반은 일부러 섞어두고 나오는 습관이 생겼다”고 얘기했다.

▲어묵탕 육수를 재활용하는 모습이 적발돼 논란이 된 해당 술집. /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들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일부 식당들의 일탈로 외식업계가 전체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22일,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한 순대국밥집에서는 손님이 남기고 간 반찬들을 바로 뚝배기 그릇에 섞어버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식당 주인은 “우리는 손님 자리에서 남은 음식을 바로 바로 섞어 버린다”며 “이런 모습을 보이면 손님들도 안심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마포구에서 레스토랑을 운영 중인 이모(28)씨는 “‘우리는 음식을 절대 재사용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주려고 한다”며 “손님이 자리를 떠난 후에 남은 잔반이나 그릇을 최대한 쌓는다”고 얘기했다.

일러스트=정다운

부산시 수영구에서 2대째 33년동안 언양불고기집을 운영해온 김태규(42)씨는 “비슷한 메뉴를 판매하는 근처 업장에서 백김치 등의 반찬을 김치찌개로 재활용 하는 것으로 안다”며 “배추값이 비쌀 때도 정직하게 장사해온 사람들은 오히려 손해를 본다”고 말했다. 김씨는 “만약 이러다 다른 식당에서 문제가 생기면 덩달아 근처 여러 업장이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코로나19 때문에 안 그래도 힘든데 이런 일까지 겹치니 요식업계 분들이 오히려 더 화를 내는 상황”이라며 “요즘은 원산지 표시 등이 생활화 되어 있어 절대 다수의 식당들은 깨끗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음식 재사용 논란...적발 쉽지 않아

업계 관계자들은 음식 재사용이 반복되는 이유 중 하나로 음식 재활용 여부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을 꼽았다. 음식점 점검은 기본적으로 허가권자가 하도록 되어 있다. 음식점 영업 허가를 관할하고 있는 구청에서 해당 구의 음식점을 점검하는 식이다.

문제는 음식 재활용이 의심돼도 적발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한 구당 위생과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2~3명 정도”라며 “해당 식당에 CCTV 같은 것이 설치돼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구청 직원들도 적발이 쉽지 않다. 특정 반찬의 음식물 쓰레기가 너무 적게 나오면 추정하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DB

또 외식업계 관계자는 “손님이나 직원이 직접 목격하거나 사진을 찍어 신고하지 않는 이상 발견하기가 어렵다”며 “종종 손님이 한 번 베어 물고 간 고추를 다져서 다대기로 쓴다는 신고가 들어오지만 이런 경우는 내부 직원이 불만을 가지고 동영상을 찍지 않는 이상 적발이 어렵다”고 말했다.

일부 요식업자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음식을 재활용 한다고 해서 이윤이 남는 게 아니다”라며 “오히려 손해가 더 크다”고 말했다. 애초에 남은 음식을 재활용 해 아낄 수 있는 비용이 크지 않은데다 차라리 손님이 식사 한 번 더 하러 오는 게 수익이 크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