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모집인이 고객의 명의를 도용해 이중 대출을 받았다면 해당 고객은 금융사에 대출금을 갚을 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금융사도 본인 여부를 확인할 의무를 소홀히 한 책임이 있다는 취지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뉴스1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오경미)는 할부금융을 전문으로 하는 제2금융사 오릭스캐피탈(오릭스)이 김모씨를 상대로 제기한 대여금 소송에서 오릭스에게 패소 판결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6일 밝혔다. 김씨는 대출 모집인에게 명의를 도용 당한 사건 피해자다.

대출 모집인은 금융사와 위탁 계약을 체결하고 대출 신청 상담, 신청서 접수 및 전달 등의 업무를 하는 대출상담사를 말한다. 오릭스는 대출 모집 전문 법인인 휴먼트리에게 대출 모집 업무를 맡겼다.

그런데 휴먼트리 소속 대출 모집인들은 2018년 10월부터 2019년 8월까지 오릭스 고객 15명의 명의를 도용해 오릭스에서 34억5700만원을 이중 대출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건으로 대출 모집인 3명이 사기죄 등으로 기소돼 1명은 징역 3년, 2명은 각각 징역 2년을 2021년 확정받았다.

오릭스는 대출 모집인에게 대출금을 받지 못하자 명의를 도용당한 피해자들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민법에는 제3자가 볼 때 대리인이 원래 명의자에게 허락을 받아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명의자가 대리인의 행위를 책임진다는 조항이 있다.

1심은 오릭스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대출 모집인 등이 제출한 계약 서류에 신빙성을 의심할 만한 특별한 정황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오릭스로서는 대출 모집인이 고객 명의를 도용해 이중 대출을 받을 것이라고 의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2심은 1심을 취소하고 오릭스 패소 취지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오릭스가 고객의 본인 확인 의무와 대출 모집 법인 관리 책임을 소홀히 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역시 오릭스가 대출 실행 과정에서 관리 감독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며 2심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