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전세 보증금을 실제보다 부풀린 계약서를 낸 세입자에게 대출을 해줬다면, 돈을 떼여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돌려받지 못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허위 전세 계약에 해당하므로 HUG는 약관에 따라 보증 책임을 지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이흥구)는 신한은행이 HUG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HUG가 신한은행에 세입자 A씨의 대출금을 대신 갚아주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런 내용의 파기환송 결정에 따라 사건은 서울고법으로 되돌아갔다.
A씨는 지난 2017년 보증금 2억6400만원인 전세 계약을 체결한다며 신한은행에서 2억1000만원을 대출받았다. 2년 후 대출 만기일에 A씨는 대출금을 갚지 못했다. 은행 조사 결과 A씨가 실제로 집주인에게 준 보증금은 2억3000만원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은행은 고객이 대출금을 갚지 못할 것에 대비해 HUG과 대출채무 보증 계약을 맺는다. 고객이 돈을 못 갚으면 HUG가 대신 갚아주는 것이다. 신한은행이 HUG에 A씨의 대출금을 달라고 했지만 HUG는 이를 거절했다. HUG 약관에는 ‘사기 또는 허위 전세계약으로 대출을 받았을 때에는 보증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돼 있었다.
1심은 HUG가 신한은행에 대출금을 갚아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전세 계약은 실제 지급된 2억3000만원을 기준으로 체결된 유효한 임대차 계약”이라고 판단했다. 전세 계약 체결 과정에서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 허위나 조작된 행위가 없었다고 본 것이다. 2심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HUG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전세보증금이 실제 지급 금액과 다른 내용으로 정해진 것은 중요 계약 사항이 허위인 것으로 HUG가 보증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