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정다운

초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더라도 입학할 수 없는 아이들. 아파도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 학대를 받더라도 감시 체계에 잡히지 않아 보호받을 수조차 없는 아이들. 이들은 엄연히 세상에 존재해도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이다. 최근 감사원 조사 결과, 이런 ‘투명인간 아동’이 전국에 최소 2236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을 이렇게 만든 제도와 법률적 허점, 그리고 이에 대한 대책을 3부에 걸쳐 살펴본다.[편집자 주]

#어려서부터 자주 병치레를 하던 6살 하은이는 어느 날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고열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상태가 위중해 종합검진을 받아야 할 것 같다는 의사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하은이는 병원에 입원할 수 없었다. 미혼모인 어머니가 출생등록을 하지 않은 탓에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입원해 검진을 받으려면 수천만원에 달하는 병원비를 고스란히 자비로 내야 한다. 경제적 여력이 없는 어머니는 하은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출생 직후 비닐봉지에 담겨 집 근처 길가에 버려진 7살 수호. 마침 누군가가 수호를 데려다 키웠지만, 보호자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수호는 또래 아이들처럼 어린이집에 갈 수 없다. 초등학교도 마찬가지다.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수호는 의무 교육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은이와 수호는 실제 사례가 아니라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들이 자랐을 때 겪을 수 있는 상황을 가상으로 설정해 본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하은이와 수호 같은 아이들이 정말 존재하고 있을 수 있다. 최근 감사원 조사 결과,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출생한 아동 중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는 2236명에 달했다. 연간 평균 280명꼴이다. 감사원이 이들 중 약 1%인 23명을 표본조사로 추려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어린이들이 무사한지 확인한 결과, 이 중 최소 2명 이상이 태어나자마자 친모에게 살해돼 자택 냉장고에 시신이 보관돼 있던 사실이 발견됐다.

만약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들이 살해되지 않고 무사히 자랐다 하더라도 이들의 삶은 순탄할 수 없다. 하은이와 수호처럼 이들은 법이라는 울타리 밖에 존재하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검사 직권 출생신고 가능해도 출생 미등록 아동 찾기 힘들어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46조 1항은 ‘혼인 중 출생자의 출생 신고는 부 또는 모가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동거하는 친족이나 의사, 조산사 등이 부모 대신 출생등록을 할 수 있지만, 부모가 숨길 경우 이들이 대신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출생신고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도 5만원에 불과해 강제력도 떨어진다. 출생신고 의무자인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에는 국가가 아동의 출생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이른바 ‘유령 아동’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서류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은 법적 보호 대상이 아니다. 출생 사실이 공적인 장부에 등록돼야만 비로소 법률상 신분이 인정되는데, 이런 공식적 등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아동들은 법률상 신분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국민이라면 당연히 누리는 어떠한 법적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아동들이 누군가에 의해 발견돼 법적 권리를 찾게 되는 경우도 드물지만 존재하긴 한다. 지난 2016년 5월 검찰은 대전에서 18세 소녀에 대한 학대 신고를 받고, 이를 수사하던 중 아이의 출생 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사실을 발견하고 2017년 검사 직권으로 출생 신고를 했다. 부모가 신고를 하지 않아 자녀의 복리가 위태롭게 될 우려가 있는 경우 ‘검사 또는 지자체장’이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한 가족관계등록법 제46조 4항에 의거해서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A라는 여성은 남편과의 혼인관계를 정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남성과의 관계에서 자녀를 출산했다. 경제적인 여유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친인척도 없었던 A는 일면식도 없던 낯선 사람에게 아동을 맡긴 채 사라졌다. 아동학대 사건을 수사하던 검사는 친모의 행적을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자 직권으로 출생을 신고했다.

하지만 이런 아동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이런 아동들은 예방 접종이나 미취학 아동 전수조사 등 국가안전망에도 잡히지 않기 때문에 검찰이 직권으로 출생 등록을 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죽거나 학대를 당하고 나서야 그 존재가 드러난다. 2021년 경북 구미에서 세 살배기 아이가 버려진 채 반 미라 상태로 발견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말에는 24세, 22세, 15세인 제주의 세 자매가 출생신고 없이 국가의 보호 울타리에서 벗어난 채 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출생 미등록 아동학대 사건은 2018년 5건, 2019년 89건, 2020년 74건, 2021년 74건 등 매년 수십 건을 웃돌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부모가 있음에도 출생 신고를 안 한 경우는 의도적으로 그 사실을 숨기는 것이기 때문에 검찰이나 지자체에서 해당 아동을 찾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베이비박스 유기된 아이도 부모를 몰라야 ‘기아’로 출생신고

영아 때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이들은 기아(棄兒:버려진 아이)로 출생을 신고할 수 있다. 가족관계등록법 제52조 1항은 ‘기아를 발견한 사람 또는 기아 발견의 통지를 받은 경찰공무원은 24시간 이내에 그 사실을 시·읍·면의 장에게 통보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후 지자체장은 기아의 성과 본을 창설한 후 이름과 등록기준지를 정해 등록부에 기록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허점이 존재한다. 해당 아동의 부모를 알 수 없는 경우에만 기아로 출생 신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민법 제781조 4항은 ‘부모를 알 수 없는 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성과 본을 창설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대전의 한 아동보호소는 병원 기록에 아이 생모의 기본 정보가 적혀 있다는 이유로 출생 신고를 거부당한 적도 있다. 때문에 유령 아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생신고와 관련한 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법 개정 없이도 아동을 찾을 방법이 존재하긴 한다. 단,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에 한해서다. 병원이 출생과 관련한 진료비를 청구하기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진료 자료를 제출해야 하고, 병원에선 아동에게 결핵 예방접종 혹은 B형 간염 예방접종을 위해 ‘임시 신생아 번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임시 신생아 번호를 부여받은 아이가 1개월 내에 출생신고가 됐는지 확인 후 지자체장에게 출생 신고를 요청하면 된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 제18조를 근거로 개인정보를 수집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어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명백히 정보주체 또는 제3자의 급박한 생명, 신체, 재산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목적 외에도 임시 신생아 정보를 사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분산된 출생 신고 시스템 역시 유령 아동을 찾아내기 어려운 걸림돌 중 하나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출생등록 업무는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다. 가족관계등록은 법원이, 주민등록은 행정안전부, 아동복지 정책은 보건복지부, 또 출생신고는 각 관할 지자체가 맡고 있다. 출생 미등록 아동의 실태를 조사하고 관리하는 전담 부서가 없다 보니 출생 신고가 안 된 아동이 발견되더라도, 이들의 정보를 정리하고 공유하는 곳이 없는 실정이다.

결국 병원 안이든 밖이든 출생 미등록 아동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국회는 ‘출생통보제’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출생통보제는 아이가 태어나면 그 사실을 병원이 지자체에 통보하도록 하고, 지자체장은 출생신고가 됐는지 확인해 누락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가 있다면 지자체장이 직권으로 가족관계등록부에 출생 사실을 기록한다.

사단법인 두루의 김진 변호사는 “현재 출생 신고에 대한 1차 의무자는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가 출생 신고를 하지 않으면 아동이 드러날 방법이 없다”며 “만약 아이가 기아로라도 발견이 된다면 검사나 지자체장이 직권으로라도 출생 신고를 할 수 있지만, 아동 자체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출생통보제 도입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