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손민균

법무부가 판·검사 정원을 590명 늘리는 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판·검사 6000명 시대가 열릴지 주목된다. 법원은 재판 지연을 해소하기 위해 판사 정원을 늘린다는 입장이다. 검찰도 공판 업무가 늘어나는 만큼 정원을 늘릴 방침이다. 법원과 검찰은 인력난을 호소하지만 검찰 권한 축소를 추진하는 야당이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판사와 검사 정원을 내년부터 향후 5년 간 각각 370명, 220명 늘리는 판사·검사 정원법 개정안을 지난 9일 입법 예고했다. 현행법상 판사와 검사 정원은 각각 3214명, 2292명으로 개정안이 통과되면 각각 3584명, 2512명으로 늘어난다. 판검사 정원은 2014년 늘어난 뒤 8년째 변동이 없다.

◇ ”해외보다 판사 부족하고 업무 과중”

법원은 법관 인원을 늘려 재판 지연을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1심 합의부에서 형사 사건을 처리하는데 걸린 기간은 2020년 평균 156일이었지만 작년 평균 181일로 늘었다. 법조계에선 “한국 판검사 수는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수준”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대법원 ‘각국 법관의 업무량 비교와 우리나라 법관의 과로 현황’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 법관은 2966명이다. 민사·형사 등 본안이 접수된 사건은 137만6438건으로 법관 1명당 사건 처리 건수는 464건이다. 해외 법관 인원은 독일(2만3835명), 프랑스(7427명), 일본(3881명) 등으로 집계됐다. 법관 1인당 사건 처리 건수는 독일(89.63건), 프랑스(196.52건), 일본(151.79건) 등이다. 해외보다 법관 인원은 적고 사건 처리 건수는 많은 셈이다.

대법원은 “우리나라 법관 1인당 사건 처리 건수는 독일의 5배, 일본의 3배, 프랑스의 2배 이상”이라며 “민사·형사만 산정한 것으로 그 밖에 처리하는 사건도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건 처리에 급급해 새로운 법리 연구 시간이 부족해지는 등 부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했다.

대법관이 현재 ‘상고 제도 개선 실무 추진 태스크포스’를 통해 대법관을 14명에서 18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현재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뺀 대법관 12명이 소부 3곳에서 4명씩 배치돼 사건을 심리하고 있는데,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를 3곳에서 4곳으로 늘려 재판 지연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 “국민 10만명당 검사 4명, 사건 처리 지연 해소해야”

검찰도 공판 중심주의 강화 기조에 맞춰 정원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국내 인구 10만명당 검사 수는 2018년 4명, 2020년 4.1명이다. 대검찰청 연감에 따르면 작년 검찰이 사건 처리한 인원은 148만3352명이다. 전국 검사 2200여 명 기준으로 검사 1인당 670여 명의 사건을 처리한 것이다.

검찰은 검경(檢警) 수사권 조정으로 형사 사건 처리와 재판이 길어지고 국민 불편이 심화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검사의 사법 경찰에 대한 수사 지휘가 폐지되면서 사법 경찰의 송치·불송치 결정 이후 보완 및 재수사 요청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한다.

검사가 작성한 피신조서(피의자 신문 조서)의 증거 능력이 제한되는 것도 재판 지연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예전에는 피의자가 검찰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해도 강요에 의한 진술이 아닌 이상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됐으나 현재는 검찰에서 했던 진술을 재판에서 번복하면 증거로 쓸 수 없다. 피고인과 증인을 법정에 불러 하나하나 질문하고 답변하는 과정에서 재판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형사 재판 장기화, 입증 난이도 상승, 공판 중심주의 강화 등으로 공판 업무 부담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검사 증원으로 인권 보호, 범죄 수익 환수, 피해자 지원 등 업무 역량을 제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에게 수준 높은 형사 사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다만 검사 증원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등 검찰 개혁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의 반대가 예상된다. 민주당은 현재 대장동·노웅래 민주당 의원의 뇌물 수수·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취업 특혜 의혹 등 야권을 겨냥한 수사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검찰이 각종 요직을 차지한 정권에서 검찰을 증원하는 속내가 무엇인지 우려스럽다”며 “수사권 축소를 명분으로 내세우는데 수사권이 축소돼 검사들이 줄었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 권력을 공고히하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