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7월 10일 19시 40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올해 ‘최대어’로 주목 받는 5조원 규모의 SK이노베이션 액화천연가스(LNG) 유동화 딜이 3파전으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브룩필드자산운용, 그리고 국내 자본시장 강자인 메리츠증권이 맞붙었다.
두 운용사는 SK이노베이션의 LNG 발전소들이 발행하는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베팅했다. RCPS가 부채가 아니기 때문에 SK 입장에서 부담이 덜한 조건이며, 따라서 딜의 완주 가능성도 크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와 달리 메리츠증권은 LNG 자산에 전환우선주(CPS) 형태로 투자하며 SK이노베이션의 신용 보강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용 보강이 들어가면 사실상 부채로 봐야 하는 만큼, 빚이 늘어나는 것을 피해야 하는 SK 측에서 그런 조건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메리츠증권은 이와 함께 SK이노베이션 자회사 SK온에도 주가수익스와프(PRS) 방식으로 투자해줄 수 있다는 제안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SK E&S 때처럼 RCPS 택한 KKR vs 브룩필드
1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날 SK이노베이션 LNG 유동화 딜 예비입찰에 KKR, 브룩필드자산운용, 메리츠증권이 참여했다.
SK이노베이션 LNG 유동화는 광양·파주·여주·하남·위례발전소 등 민간 발전소 5곳과 LNG 터미널 등 인프라 자산을 기반으로 현금을 조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SK 측은 이 자산들을 유동화해 최대 5조원의 자금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KKR과 브룩필드는 RCPS 형태로 투자하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각 발전 자회사들이 RCPS를 발행해 특수목적법인(SPC)에 팔고, 이 SPC에 사모펀드가 투자하는 형태다.
일각에서는 RCPS의 상환권이 발동하면 투자금 5조원이 부채로 인정돼 SK 측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애초에 SK이노베이션은 총부채가 75조원에 달하는 등 재무 부담이 커지자 이번 LNG 유동화 딜을 추진한 것인데, 이런 상황에 부채가 늘어나는 구조의 투자 제안을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KKR과 브룩필드는 RCPS의 상환권을 발행사, 즉 SK이노베이션 LNG 자회사들에 부여함으로써 투자금이 부채로 인식될 위험을 해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반적으로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은 RCPS의 상환권이 발행사에 있는 경우 자본으로, 상환 요구권이 투자자에 있는 경우 부채로 인정한다. 상환 여부에 대한 결정권이 발행사에 있다면 투자자에게 채권적 권리가 없기 때문에 자본으로 분류하는 게 타당하다.
RCPS는 과거 SK E&S가 약 3조원을 조달할 당시 사용했던 방식이기도 한데, 실제로 이 때도 RCPS의 상환권이 투자자 KKR이 아닌 SK 측에 있었다. 그 덕에 SK E&S는 이 RCPS를 자본총계에 포함시켜 부채비율을 낮추는 효과를 얻은 바 있다.
다만 이번 RCPS의 상환권이 SK이노베이션 측에 있다 하더라도 신용평가사가 이를 자본으로 인정할 지는 미지수다. 신평사들은 SK E&S가 발행했던 RCPS를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하면서도, 실제로는 부채에 더 가깝다고 지적해 논란이 된 바 있다.
◇CPS로 투자하고 SK이노가 신용보강?…“사실상 부채”
메리츠증권의 전략은 KKR, 브룩필드와 다르다. ‘상환권’을 아예 배제하고 전환권만 살아있는 CPS 형태로 투자하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대신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신용 보강을 받는 방안을 요구했다고 한다.
IB 업계 관계자는 “메리츠증권은 6%대 금리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렇게 ‘낮은’ 금리가 가능하려면 비신용물이 아닌 신용물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CPS가 사실상 부채이기 때문에 내부 조달금리가 낮아질 수 있었고, SK에 6%대 금리를 제시하는 게 가능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방식이 도리어 SK의 채무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IB 업계 관계자는 “메리츠증권은 아직 LNG 자산에 대한 실사도 다 마치지 않은 상황”이라며 “사실상 SK이노베이션의 신용을 보고 투자한 것이어서, CPS를 부채로 보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SK의 신용 보강을 없애서 CPS의 부채 인식 리스크를 해소하고 ‘에쿼티 투자’의 성격을 강화한다면, 메리츠증권 입장에서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CPS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에쿼티 투자는 일반적으로 회수가 어렵고 가격 변동성이 높아서, 대폭 늘어날 경우 금융감독원의 순자본비율(NCR·영업용순자본을 총위험액으로 나눈 값) 규정상 위험가중치가 매우 높아지게 된다. 이 경우 증권사의 NCR이 낮아져 다른 고위험 투자 활동이 사실상 막히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메리츠증권은 낮은 금리 외에도 ‘SK온 패키지 딜’까지 SK 측에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메리츠증권은 최근 SK온 측에 PRS 방식으로 수조원을 투자하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모회사 SK이노베이션과 지주사 SK(주)의 자산을 담보 삼아 자금을 지원해주겠다는 것이다. 현재 SK(주)는 SK이노베이션 지분 55.9%를, SK이노베이션은 SK온 지분 87%를 보유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메리츠가 정말 SK온에도 수조원을 투입해줄 능력이 된다면, SK이노베이션 LNG 유동화 딜에서도 굉장히 높은 가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