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시죠?”
“어머니, 저는 아들 하치로예요.”
“어머, 우리 아들도 하치로인데...”
치매 치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약물이 있다. 바로 ‘아리셉트(Aricept)’다. 1996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이후 지금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치매 치료제다. 치매 환자의 뇌 속 신경전달물질 분해를 억제해, 일시적으로 신경 대사를 원활하게 하고 인지 기능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런데 이 약은 일본의 한 제약회사 연구원의 효심(孝心)에서 시작된 것으로 더 유명하다. 주인공은 제약사 에자이의 임상부 연구원이었던 스기모토 하치로(杉本八郎) 박사.
그는 치매를 앓게 된 어머니가 아들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신약 개발에 인생을 걸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연구는 멈추지 않았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가 찾아낸 신물질은 임상 시험을 거쳐 치매 치료제로 세상에 나왔다.
✅80대 뇌과학자가 매일 하고 있는 것
스기모토 박사가 개발한 치료제는 전 세계 치매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기억의 실마리’가 되고 있다.
1997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치매 신약 출시 기념식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에겐 자녀가 9명 있었습니다. 가난했지만 교육에 특히 열심이셨죠. 그랬던 어머니가 어느 순간부터 점점 저를 알아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나이를 먹어도 총기 있는 정신으로 살 수 있게 하는 약을 개발하겠다고...”
올해 82세인 그는 여전히 왕성한 사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나고야아오이대학 총장으로 취임해 아사히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스스로 ‘평생 현역’을 자처하며 누구보다 젊게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스기모토 박사는 뇌 노화를 막기 위해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그가 최근 펴낸 책 <82세 치매 연구 제1인자의 일상>(한국 미출간)을 바탕으로, 그가 실천하고 있는 생활 속 치매 예방법을 소개한다.
✅치매 걱정 없이 100살까지 살려면
일본의 치매 연구자들이 일반인에게 자주 인용하는 대표적인 연구가 있다. 지난 2018년 도호쿠대학 연구진은 미야기현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고령자 1만3990명을 대상으로 보행 습관과 치매 발병률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하루 1시간 이상 걷는 사람은 30분 미만 걷는 사람보다 치매에 걸릴 위험이 약 28% 낮았다. 또 30분~1시간 미만 걷는 이들도 30분밖에 걷지 않는 사람에 비해 치매 발병 위험이 약 19% 낮았다.
연구진은 “보행 시간이 길수록 치매 위험이 낮아지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만약 조사 대상 전원이 하루 1시간 이상 걸으면 치매 위험이 18.1%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스기모토 박사 역시 이 연구를 인용하며 유산소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걷기나 조깅 같은 유산소 운동은 산소를 활용해 혈액 순환을 촉진하는 데에 효과적이다. 뇌에 혈류가 원활히 흐르면 산소와 영양분이 잘 전달돼, 뇌세포가 활발히 작동하고 인지 기능도 지킬 수 있다.
✅1주일에 3번, 30분이라도 걸어라
그런데 아무리 보행 시간이 길수록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매일 꾸준히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다.
스기모토 박사는 “운동에 취미가 없다면 1주일에 3~4회, 하루 30분 이상 걷는 것을 목표로 가볍게 시작해 보라”면서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거나, 이틀에 한 번쯤은 한 정거장 앞에서 내려 걸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너무 빠른 속도로 걸으면 혈압이 오를 수 있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고 편안한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걷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이 습관화되면 다리와 허리 근력이 강화되고, 심폐 기능도 향상된다. 근육량이 감소한 고령자는 쉽게 노쇠해 치매 위험이 커진다. “몸이 허약해서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운동량이 부족해져 식욕부진, 골절, 우울증 등이 생기기 쉽습니다.”
활동 시간이 늘어나면 식욕이 증가해 필요한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하게 되어 건강한 장수를 위한 기반이 마련된다. 특히 밤에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된다는 점도 장점이다. 뇌 속 노폐물 배출은 대부분 수면 중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2013년 워싱턴대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수면이 불안정한 사람은 안정적인 수면을 취하는 사람에 비해 알츠하이머형 치매의 원인 물질로 알려진 아밀로이드 베타가 5.6배나 더 많이 축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 부족은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의 생활 습관병 위험도 높인다는 보고도 있다. 양질의 수면을 충분히 취하는 것은 생활 습관병 예방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저녁 시간에는 카페인 섭취를 피하고, 잠들기 직전 1시간은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하며, 기상 후 2시간 이내에는 햇볕을 쬐어 생체 리듬을 조절하는 것이 수면의 질을 높이는 주요 방법으로 꼽힌다.
✅인지활동+운동 합친 ‘코그니사이즈’ 아시나요
스기모토 박사는 일본 국립장수의료연구센터가 고안한 치매 예방 운동법인 ‘코그니사이즈’도 소개했다. 코그니사이즈란, 인지 활동(cognition)과 운동(exercise)을 합친 조어다. 단순히 몸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머리도 함께 사용해서 몸과 머리 모두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목표다.
코그니사이즈의 대표적인 운동법은 다음과 같다. 좌우로 발을 옮기며 걷는 가벼운 유산소 운동인데, 걸음 수가 3의 배수일 때마다 손뼉을 치는 방식이다(※위 그래픽 참고). 이때 넓적다리를 가능한 한 높이 드는 것이 효과적이다.
스기모토 박사는 “겉보기엔 간단해 보여도 집중하지 않으면 쉽게 틀릴 수 있다”며 “3의 배수에서 박수를 잘 친다면, 3이 아닌 특정 숫자에서 치도록 바꾸거나 100에서 거꾸로 수를 세면서 3씩 뺄셈을 했을 때 박수를 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치매 고위험군이라고 불리는 경도 인지 장애 단계에서 코그니사이즈를 매일 실천하면 인지 기능이 뒤처지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 경도 인지 장애는 진단을 받고 나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5년 내에 절반은 치매에 걸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