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미국 투자를 강조했던 미래에셋그룹이 올해 들어서는 “미국 중심 투자 환경에 균열이 생겼다”며 대안 투자처로 중국을 적극 밀고 있습니다. 올해 미 증시가 조정을 받았고, 분산 투자의 중요성이 날로 강조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래에셋의 행보는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보입니다.
다만 태세 전환이 너무 갑작스럽다 보니 미래에셋 임직원조차 “핸들을 너무 확 꺾은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작년만 못해도 미 증시가 여전히 견고한데, 그룹의 기세는 마치 “미국 이제 끝이야, 중국만이 희망”이라고 외치는 듯하다는 겁니다. 현재 미래에셋그룹은 증권사·자산운용사 등 계열회사를 총동원해 중국 투자의 필요성을 전사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연초로 거슬러 올라가 보죠. 1월까지만 해도 미래에셋그룹은 미국 주식 투자자를 겨냥한 상품과 이벤트에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예컨대 미래에셋자산운용은 ‘TIGER미국대표지수ETF 퀴즈 이벤트’와 ‘2025년 미국 증시 전망 유튜브 라이브 세미나’를 진행하고, 미국 투자 상품의 누적 순매수액이 얼마나 늘었는지 알리는 데 주력했습니다.
2월로 넘어가면서 미래에셋은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당시 중국 증시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고, 결정적으로 그룹 오너인 박현주 회장이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서학개미를 향해 “테슬라는 중국 BYD, 지리자동차 등으로부터 상당한 도전을 받고 있다”며 포트폴리오 조정을 공개적으로 권유했습니다.
이후 미래에셋은 그룹 차원에서 임직원의 중국 출장을 적극 장려했다고 합니다. 알리바바·BYD·로보센스 등 중국 혁신 기업의 눈부신 성장 속도를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라는 취지였죠. 미래에셋증권(006800)은 전국 영업점에서 선발한 프라이빗뱅커(PB)들을 중국으로 출장 보내고 있습니다. 리서치센터 소속 애널리스트들도 수차례 중국 출장길에 올랐다고 합니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달 29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2025년 글로벌 자산배분 포럼’을 열었는데요. 이례적으로 언론사 수십 곳을 초청해 기사화에 힘썼습니다. 이 자리에서 허선호 미래에셋증권 부회장은 “지난 3년간 세계 금융시장은 미국이라는 단일 엔진에 크게 의존해 왔지만, 미국 중심의 투자 환경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며 “중국은 민간 기업 친화적인 정책 변화와 함께 자국 중심의 기술 자립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최근 내놓은 상장지수펀드(ETF) 역시 대부분 중국에 투자하는 상품입니다. 금융투자업계 고위 관계자는 “박현주 회장은 미래에셋그룹에서 ‘글로벌전략가(Global Strategy Officer)’란 직함을 가졌고 입김도 절대적인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미래에셋자산운용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의 기술주 시가총액 차이가 6배 이상 난다”며 “글로벌 자산배분 차원에서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분산 투자하는 ETF도 출시할 예정”라고 설명했습니다.
미래에셋 임직원 사이에선 뒷말이 무성합니다. 한 미래에셋 직원은 “올해 미 증시 조정에 따른 글로벌 투자처 다변화 시도는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중국만 너무 강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다 보니 간밤에 뉴욕 증시가 상승이라도 하면 아침에 괜한 불안감이 든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직원은 “현장 PB 중에는 중국 주식 매수를 권하라는 직·간접적 압박에 스트레스를 토로하는 이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그동안 미국 테크주 위주로 미국 시장이 많이 올랐는데, 올해는 한국·중국·인도 등 신흥국으로 관심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며 “고객들에게 글로벌 자산배분 투자를 계속 권유할 방침”이라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