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전일 대비 44.10포인트(1.48%) 상승한 3,021.84를, 원·달러환율은 12.80원(0.93%) 하락한 1,367.40원을 나타내고 있다. 코스피가 종가 기준 3000선을 마지막으로 넘긴 건 지난 2021년 12월 28일(3020.24) 이후 3년 6개월여 만이다.

한국 대표 주가지수인 코스피 지수가 20일 3000 고지에 올라서고 6월 상승률이 12%를 기록, G20(20국) 주가지수 중 압도적인 수익률 1위가 됐다.

한국을 뺀 다른 나라 주식시장은 분위기가 완전히 딴판이다. 올 초 시작된 미국발 관세 전쟁이 봉합되기는커녕 지지부진한 협상이 이어져 무역 부진이 경제에 타격을 주기 시작한 데다, 이스라엘·이란 갈등으로 유가 상승까지 겹쳐 투자 심리가 크게 움츠러들었기 때문이다. 최고 투자처로 꼽는 미국 나스닥 지수(2.26%)와 중국(0.37%), 홍콩(1.03%) 지수는 이달 들어 소폭 오르는 데 그쳤고 독일(-3.92%), 프랑스(-2.56%) 등 유럽 증시는 뒷걸음쳤다.

그래픽=양인성

◇낭중지추 코스피

이런 가운데 한국 증시가 낭중지추(囊中之錐·‘주머니 속 송곳’처럼 숨어 있어도 뛰어남이 드러난다는 뜻)처럼 돋보이는 대약진을 펼치는 데는 새 정부 정책에 대한 큰 기대감이 자리 잡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경제는 심리고, 주가는 선행지표다. 심리만으로 코스피 3000은 간다”고 했다. 이 정부는 ‘임기 내 코스피 5000’을 목표로 내걸고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확대하는 상법 개정, 자사주 원칙적 소각 등 상장사에는 ‘채찍’인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주가 올리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19일 나온 30조5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안으로 유동성(돈) 공급이 예고된 것도 불붙은 주식시장에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최근 골드만삭스, JP모건 등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이 한국 시장에 대한 투자 의견을 ‘비중 확대’로 높였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수년간 저조한 수익률로 외면받았던 한국 시장이 마침내 대전환점을 맞이했다”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전했다.

외국인은 작년 8월~올해 4월 9개월 연속 한국 주식을 순매도(매도가 매수보다 많음)하며 금융 위기 이후 최장 기간 순매도 기록을 써왔다. 그러나 지난달 순매수로 방향을 튼 데 이어 이달에도 20일까지 5조원이 넘는 뚜렷한 순매수세를 보이며 주가 상승을 이끌고 있다.

그래픽=양인성

◇”이제야 저평가 벗어나는 국면”

다만 긴 시각으로 보면 한국 증시는 이제야 2022년 초 수준을 회복한 데 불과하다. 미국 나스닥은 물론 일본, 독일, 이웃 대만 증시 등은 최근 들어 주춤할 뿐 3년 반 동안 꾸준히 우상향해 왔다.

한국거래소 통계를 보면 코스피의 주가순자산비율(PBR·낮을수록 저평가)은 19일 막 1.0배에 도달했다. 그간 1보다도 낮게 저평가됐던 주가(시가총액)가 이제야 상장사의 장부 가치와 같아졌다는 얘기다. 미국(4.8배)은 물론이고 인도(4.0배), 대만(2.6배), 중국·일본(1.5배) 등에 아직 못 미치지만, 주식 평가 가치가 이제야 제값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대형 펀드의 투자 길잡이 역할을 하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한국 증시를 현재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재분류할지 말지 여부도 조만간 결정된다. 만약 MSCI 지수에서 선진국으로 새로 분류된다면 자금이 최대 300억달러(약 41조원)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골드만삭스의 추정도 있다.

◇집 나간 개미 군단 돌아오나

지금까지는 외국인이 주도해서 증시를 밀어올렸지만, 개인 투자자들도 조만간 증시로 돌아올 태세를 갖추고 있다. 증시 대기 자금인 고객 예탁금이 최근 65조원이 넘어서는 등 개인 투자자의 국내 증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중이다.

2021년 사상 처음으로 코스피가 3000선을 넘었을 때와 이번에 외국인, 기관, 개인 투자자의 순매수 상위 종목을 비교해보면, SK하이닉스, 삼성SDI, 현대차,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은 공통적으로 ‘인기주’였다. 그러나 이번에 외국인 순매수 상위 종목에서는 LG화학, SK바이오팜 등 이차전지·바이오주가 빠지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넥스원, 현대로템 등 방산주가 새롭게 등장했다. 개인 투자자들도 바뀐 양상을 보였다. 2021년 개인 순매수 상위에 있던 카카오, SK바이오팜 등 플랫폼·바이오주는 빠졌고, 대신 한화오션, 한미반도체, LIG넥스원 등 방산·반도체 장비 관련 종목이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