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코스닥 시장의 알짜 기업만 모은 ‘코스닥 글로벌 세그먼트(이하 글로벌 세그먼트)’의 문턱을 높인다. 유지 요건을 종전보다 강화하는 건데, 투자자가 코스닥 시장에서 손을 털고 떠나려는 조짐에 대응하는 차원이다. 이번 조치로 일부 기업은 퇴출될 예정이다. 다만 시장 충격을 고려해 시행 시기는 내년으로 가닥을 잡았다.
7일 국회와 금융당국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글로벌 세그먼트의 자격 유지 조건인 기존 ‘2개 이상의 평가기관으로부터 기업지배구조 C등급 이상’에서 평가기관 수는 유지하고, 등급 수준을 ‘B’로 올린다. 앞으로 글로벌 세그먼트에서 자리를 지키려면 2개의 평가기관으로부터 B등급 이상의 기업지배구조 점수를 맞아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서 평가기관이란 한국ESG연구원(KCGS), 한국ESG연구소, 서스틴베스트 등 회사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수치화해 점수를 매기는 곳이다. 이들은 회사의 환경경영체계와 인권 경영, 내부통제의 수준을 고려해 등급을 책정한다.
강화된 기준의 시행 시점은 내년 6월이다. 기준이 높아지면서 여러 기업이 퇴출당할 것을 우려해 충분한 시간을 둔 것이다. 가장 최근 등급을 기준으로 높아진 요건을 못 맞춘 상장사는 골프존(215000), 리가켐바이오(141080), 서울반도체(046890), 파트론(091700), 피에스케이(319660), 하나머티리얼즈(166090) 등 6사로 전체 48사의 12.5%다.
글로벌 세그먼트는 1792개의 코스닥 상장사 중에서 시장 평가가 우수하고 수익성 또는 영업 실적 측면에서 경영 성과가 높거나 성장력과 기술력을 인정받은 기업의 집합이다. 2022년 손병두 당시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코스닥 시장이 유가증권시장의 2부 리그로 받아들여지는 숙명을 바꾸겠다”며 야심차게 도입한 제도다.
이 기업만을 모은 지수를 기반으로 한 상장지수펀드(ETF)도 있다. 상장사로선 글로벌 세그먼트에 들면 패시브 자금 유입을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현재는 전체 상장사의 2% 수준만 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국거래소는 글로벌 세그먼트의 진입 요건을 낮춰 왔다. 시행 첫 해엔 KCGS로부터 C등급을 맞았어도 B 이상을 맞기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하면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봤다.
이어 지난해엔 평가기관을 KCGS 1곳에서 3곳으로 늘리고 이 중 두 군데에서만 C등급을 맞으면 됐다. 한국거래소는 평가기관의 다양화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요건을 맞추지 못할 상장사들이 해당 변경으로 혜택을 본 건 사실이다. 이렇다 보니 이번 요건 강화는 이례적이란 반응이 나온다.
한국거래소가 글로벌 세그먼트의 자격 유지 조건을 올리는 건 코스닥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세그먼트는 한국거래소의 아픈 손가락이라 알짜 중의 알짜만 걸러내는 방식으로 재정비해 투자자들의 관심을 돌려보겠다는 취지다.
글로벌 세그먼트는 2000개의 가까운 종목이 코스닥이라는 하나의 시장에서 거래되면서 대형 기업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도입됐다. 우량한 기업들만 따로 관리하는 제도를 만든 건데, 시장 반응은 없다시피 했다.
지수가 나온 지 7개월이 지나서야 ETF 사업을 하는 자산운용사 27곳 중에 업계 1·2위인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만 관련 ETF를 내놨다. 그마저도 상품이 팔리지 않아 ETF 순자산총액(AUM)을 줄이는 추세다.
500억원으로 상장한 삼성자산운용의 ETF는 현재 108억원으로 5분의 1토막 났고, 1000억원으로 상장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상품은 54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후발주자 키움투자자산운용의 ‘KIWOOM 코스닥글로벌’도 56억원에 불과해 패시브 자금을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이다.
다만 지수 성적표는 좋다. 한국거래소 입장에서 심폐소생술을 통해 살리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한 이유다. 글로벌 세그먼트 지수가 출시된 날부터 이달 4일까지 코스닥 지수는 6.08%(731.92→687.39) 떨어졌지만, 글로벌 세그먼트 지수는 37.6% 올랐다. 알테오젠이 4만원에서 36만원까지 급등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글로벌 세그먼트의 요건 강화는) 최종 확정된 사안은 아니지만 검토는 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