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서희

23일 고려아연(010130) 임시 주주총회가 최윤범 회장 측 승리로 끝났지만 경영권 분쟁의 장기화가 불가피해졌다.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이 법적 대응을 예고한 만큼, 진행 경과에 따라 3년이 더 걸릴 수도 있게 됐다.

MBK-영풍과 최 회장 간 분쟁은 2개 경로로 이뤄질 전망이다. 양측은 먼저 이번 임시주총 결의의 효력을 놓고 다툴 예정이다. MBK-영풍이 결의의 효력 정지를 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할 텐데, 만약 이 가처분이 인용되면 다시 웃는 쪽은 MBK-영풍으로 바뀐다. 3월 정기주총에서 MBK-영풍이 이길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최 회장 측은 정기주총 결의를 취소해달라는 본안 소송을 낼 가능성이 크다. 분쟁 장기화가 불가피해지는 셈이다.

양측은 그 외에도 최 회장 측의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놓고 다툴 전망이다. MBK-영풍은 최 회장은 물론 최씨 일가와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까지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형사 고발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MBK-영풍은 이 소송에서 이겨야만 이번에 최 회장 측이 만들어 놓은 순환출자 구조를 원 상태로 돌려놓고 향후 다시 있을지 모를 분쟁의 씨앗을 없앨 수 있다. 최 회장 측은 여기서 이기지 못하면 고려아연 경영권은 물론이고 강도 높은 형사 처벌까지 받을 수 있어, 승소를 위해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 ‘상호주 보유시 의결권 제한’, 외국 회사는 예외인가

2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MBK-영풍은 전날 임시주총 결과를 무력화하기 위한 가처분을 조만간 신청할 방침이다. 이날 주총에서 의결된 집중투표제 도입 의안과 이사 수 상한 설정은 물론, 최 회장 측 이사 7명의 선임도 모두 무효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MBK-영풍이 가처분으로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는 이유는 3월 정기주총까지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일단 가처분을 통해 임시주총 결의의 효력을 정지한 뒤, 정기주총에서 다시 승부를 보겠다는 게 MBK-영풍의 계획이다. 가처분이 인용된다면 집중투표 도입 및 이사 수 상한 설정은 모두 무효가 되며, 정기주총에서는 의결권 지분 과반을 확보하면 가결되는 단순투표제로 이사를 뽑을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의결권 지분 46.7%를 갖고 있는 MBK-영풍이 사실상 승리하게 된다.

MBK-영풍은 임시주총 결의 무효화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최 회장 측 전략의 ‘상법상 오류’를 꺼내 들었다. 임시주총 전날인 22일, 고려아연의 100% 손자회사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은 돌연 영풍 지분 10.33%를 최씨 일가와 영풍정밀로부터 취득했다고 공시했다. 영풍이 이미 고려아연 지분 25.42%를 들고 있는 상태에서 고려아연 또한 영풍 지분을 취득하게 하면서 최 회장 측은 영풍이 고려아연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번 임시주총에서 영풍의 의결권이 제한되고 최 회장 측이 완승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법 제369조 제3항은 두 회사가 서로의 지분을 10% 넘게 보유한 경우 상대방 기업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이를 ‘상호주’라고 한다. 그러나 MBK-영풍은 고려아연과 영풍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SMC는 호주에서 설립된 외국 법인이며 유한회사인데, 상법상 의결권 제한 규정은 상법에 따라 설립된 회사에만 적용될 뿐, 외국 회사·유한회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최 회장 측 법률대리인인 고창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임시주총에서 “(외국 회사는 예외라는 상법 조항은) 외국 회사가 국내에서 활동하는 경우 규제·감독을 위한 조항일 뿐”이라며 “상법상 ‘회사 자회사’에는 외국 자회사도 포함된다는 법무부 유권 해석도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MBK 측은 이 역시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고 재반박했다. 김광일 MBK 부회장은 “외국 회사가 예외라는 조항은 특정 규제 상황에서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라며 “이와 관련된 법원 판례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 최 회장, 정기주총서 진다면 결의 무효화 소송 장기화 전망… 길면 3년

만약 MBK-영풍의 주총결의효력정지 가처분이 인용되고 3월 정기주총에서 MBK-영풍이 승리한다면, 반대로 이번에는 최 회장 측이 정기주총 효력의 무효화를 시도해야 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다만 최 회장 쪽에서는 ‘가처분’이 아닌 본안 소송으로 대응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MBK-영풍처럼 가처분을 걸면 마찬가지로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재판장 김상훈 부장판사)에서 심리할 텐데, MBK-영풍의 가처분을 인용한 상태에서 최 회장 측 가처분까지 인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재판부가 MBK-영풍의 가처분을 인용하려면 ‘상호주 보유에 따른 영풍 의결권 제한’이 상법상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야 한다. 즉, 외국 회사는 상호주를 보유해도 의결권이 제한되지 않는다고 판결해야 하는 것이다. 재판부가 이런 판단을 내린다면, 최 회장 측이 정기주총 이후 신청하게 될 그 다음 가처분에서 정 반대 판단을 내린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최 회장 측이 3월 정기주총에서 진다면, 그 다음 대응은 ‘주총결의취소의 소’가 될 수밖에 없다고 법조계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다른 재판부에서 재차 판단을 받으려 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 경우 소송전은 2~3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MBK “가처분 패해도 공정거래법 위반 소송서 승부… 시간적 여유 충분"

MBK-영풍이 이번 주총결의효력정지 가처분에서 패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MBK-영풍은 최 회장 측의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 형사 소송에서 이겨야 한다. 해당 소송은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간 진행될 전망이다.

MBK 관계자는 “공정거래법 위반 소송에서 이기면 영풍의 의결권 제한은 취소될 것”이라며 “영풍의 의결권 제한 취소가 이번 임시주총 결과에 소급 적용되지는 않겠지만(이번 임시주총 결과를 자동으로 돌려놓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 개최될 주총에서는 영풍의 의결권 행사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경우 MBK-영풍은 앞으로 있을 주총에서 집중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해야 한다. 당장 이사를 원하는 만큼 회사에 진입시킬 수는 없지만, 현재의 지분율(도합 46.7%)을 갖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다는 게 MBK 측 설명이다. 장기간에 걸쳐 이사를 한명, 한명씩 진입시킨다는 얘기다.

김 부회장은 “우리 펀드(이번 경영권 분쟁에 동원된 6호 블라인드펀드)는 만기가 10년이며 1년씩 두 번 연장할 수 있어 시간적 여유는 충분하다”며 “이미 큰돈을 투입한 만큼 몇 년이 더 걸리더라도 천천히 회사를 바로잡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내년 3월 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최 회장에게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최 회장, 공정거래법 36조 위반했나

MBK-영풍이 공정거래법 위반 소송에서 이겨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SMC의 지분 매입으로 인한 고려아연-영풍의 순환 출자 구조를 원상회복하지 않으면, 향후 다시 분쟁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MBK-영풍이 최 회장 측 행위를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공정거래법 36조는 “누구든지 제18조제2항부터 제5항까지 및 제19조부터 제25조까지의 규정을 회피하려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 공정거래법 시행령 제42조에 따르면, ‘탈법 행위’의 유형에는 ‘자기의 주식을 취득·소유하고 있는 계열회사의 주식을 타인의 명의를 이용해 자기의 계산으로 취득하거나 소유하는 행위’가 포함된다.

김 부회장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최 회장 측이 공정거래법 36조를 정면으로 위반했다고 강조했다. 시행령 42조 속 ‘자기’는 고려아연, ‘계열회사’는 영풍, ‘타인’은 SMC라는 것이다. 즉, ‘고려아연 주식을 갖고 있는 영풍의 주식을 SMC의 명의를 이용해 고려아연의 계산으로 취득했다’는 게 김 부회장의 주장이다.

MBK는 최 회장과 박 사장, 그리고 최씨 일가까지 모두 공정위와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김 부회장은 “이번 행위는 고려아연이 한 것이며, SMC가 명의를 빌려준 것”이라며 “법인인 고려아연과 SMC가 행위를 할 때는 의사 결정권자가 있었을 텐데, 그 의사 결정권자는 최 회장과 박 사장”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과 박 사장은 고려아연의 임원이면서 SMC의 전·현직 임원이다. 최 회장은 이달 중순 SMC 이사회에서 물러났으며, 박 사장은 여전히 SMC에 남아 있다. 최씨 일가의 경우 이번에 SMC에 영풍 주식을 매각했기 때문에 공범으로 의율할 수 있다는 게 MBK 측 주장이다.

공정거래법 제124조에 따르면, 36조를 위반해 탈법할 경우 징역이나 벌금형을 부과받을 수 있다. 129조 3항에는 “검찰총장이 공정위에 통보해 고발을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