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서희

중동 정세가 격랑에 휩싸인 가운데 국책은행에 비상이 걸렸다. 국책은행들은 경영진 주재 회의를 소집하고 열고 급변하는 중동 상황이 우리 경제와 기업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는 중이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산업은행은 미국의 이란 본토 공습 이후 통합위기대응위원회를 통해 중동 내 무력 충돌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고 있다. 통합위기대응위는 김복규 산은 회장 대행 주재로 열리며 매일 중동 정세를 파악하고 있다. 각 부서가 기업 고객 동향 및 산업금융채권 발행 환경 등을 통합위기대응위에 보고하면 경영진들이 이를 바탕으로 금융지원 방향 등을 논의한다.

다른 국책은행들도 경영진 차원에서 중동 정세를 예의주시하는 중이다. 수출입은행은 지난 23일 안종혁 수석부행장 주재로 수출위기상황 점검회의를 개최했다. 수출위기 회의가 열린 것은 지난해 12·3 비상계엄 이후 이번이 네 번째다. 수은은 23일 회의에서 중동 진출 기업 동향을 살피고 중동 관련 산업에 집행된 금융지원 규모를 점검했다. 이 외에도 수은은 자체 유동성을 확인하며 추가적인 금융지원 가능성을 진단했다. IBK기업은행은 김성태 은행장 주재로 매주 열리는 비상대응위원회에서 중동 리스크를 모니터링하는 중이다.

국책은행들이 중동 정세를 예의주시하는 이유는 이란이 글로벌 원유 교역망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 남쪽에 위치한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에서 대양으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로 주요 석유 공급망이다. 전 세계 원유 해상 운송량 중 약 25%, 한국 수입 원유 중 약 68%가 호르무즈 해협을 거친다. 지난 21일(현지시각) 미국이 이란 본토에 30여발의 미사일 공습을 감행하자 이란 의회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결의하며 경제 보복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해협 봉쇄 최종 권한은 이란 국가안보위에 달려 있는데, 봉쇄가 결정되면 우리 기업들의 원유 수입에 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격화됐던 중동 분위기가 화해 무드로 바뀐 후에도 국책은행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현지 정세가 시시각각 변하는 만큼 섣불리 안심하기보다는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판단이 깔린 것이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휴전 소식 후에도 은행 내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상황을 주의 깊게 살피면서 필요시 정부 방침에 따라 빠르게 금융지원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