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위 이커머스 플랫폼 쇼피파이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포티파이는 전 세계 30여개국에서 스테이블코인 USDC를 결제 수단으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 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 1위인 쇼피파이도 지난 12일(현지 시각) 일부 가맹점이 USDC로 결제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아마존·월마트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도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검토 중이다.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거래 규모는 지난해 28조달러(약 3경8676조원)로 마스터카드·비자 합산 실적을 넘어섰다.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에 가치가 고정된 코인으로 1USDC는 1달러로 인정받고 있다. 디지털 세계에서 기축통화인 달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이 최근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법안이라 불리는 지니어스법(GENIUDS Act) 때문이다. 이 법은 압도적인 표 차로 미국 상원을 통과해 하원 통과를 앞두고 있다. 법안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은행과 인증된 비은행 금융기관으로 제한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가상자산업계는 미국이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세계 결제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해석한다.

지금껏 가상자산은 비트코인을 중심으로 ‘디지털 금’이라 불리며 투자자산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비트코인도 금처럼 물건을 사고파는 데 사용되지 않지만, 매매를 통해 투자수익을 올리는 수단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스테이블코인이 ‘디지털 달러’ 위상을 획득하면서 실제 상거래에 활용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활용 범위가 넓어질수록 전통 카드사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기존 결제 시스템은 소비자→카드사→부가가치통신망(VAN)사→결제대행(PG)사→가맹점 순서를 거친다. 실제 결제도 영업일 기준 1~3일이 소요된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수수료 없이 24시간 송금·결제가 즉시 가능하다. 카드사가 구축해 놓은 결제망을 활용하지 않고 소비자 코인 지갑→가맹점 코인 지갑으로 스테이블코인을 이체해 결제가 완료된다. 가맹점도 카드사에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돼 대중화된다면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미국은 이미 스테이블코인이 결제에 활용되고 있다. 온라인 결제·송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페이팔은 자체 스테이블코인(PYUSD)을 발행해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지원하고 있다. 페이팔 앱으로 결제하면, 이용자가 보유한 PYUSD가 가맹점 페이팔 계좌로 이체되는 구조다. 카드사 결제망을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수수료가 없다. 페이팔도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페이팔은 수수료 대신 스테이블코인 준비금을 운용해 수익을 올린다. 페이팔 이용자가 PYUSD 100개를 100달러에 구매하면, 페이팔은 고객에게 받은 100달러를 준비금으로 보관해야 한다. 이 준비금은 미국채와 현금성 자산 등 초저위험 자산에 투자되는데, 페이팔은 여기서 발생한 이자수익을 가져간다. 페이팔이 이자수익을 가져갈 수 있다는 데 동의해야 PYUSD를 이용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 USDC를 발행하는 서클 그룹의 최고경영자(CEO) 제레미 앨리어와 공동 창립자 션 네빌이 지난 5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NYSE)에서 열린 회사 기업공개(IPO)에 참석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러한 수익구조는 스테이블코인 발행 체계와 동일하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1코인=1달러’를 유지하기 위해 실물 자산을 직접 보유해야 한다. 100억개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했다면, 100억달러를 미국채·현금·예금 등으로 보관한다. 미국채 등에서 발생한 이자수익이 발행사의 수익 원천이 된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점유율 1위인 USDT를 발행하는 테더는 이러한 준비금 운용으로 2023년 62억달러(8조560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는 같은 해 골드만삭스의 순이익(79억달러)의 70%가 넘는 수준이다. 테더는 늦어도 내년 초 미국에서 결제 전용 스테이블코인을 출시할 예정이다.

위기의식을 느낀 글로벌 카드사도 적극 대응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한 결제를 지원하되, 결제 과정이 자신들의 망 내부에서만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카드사 망 내부에서 이뤄지는 결제인 만큼, 카드사는 지금처럼 결제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비자는 지난 4월 아르헨티나·콜롬비아·에콰도르·멕시코·페루·칠레의 1억5000만개 가맹점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도록 하는 ‘코인 카드’를 출시했다. 사용자는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것처럼 코인 카드를 사용해 결제하면 된다. 결제 대금만 현금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바꾼 것이다.

국내에서도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근거가 되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발의하면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카카오페이가 스테이블코인 서비스를 발행한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주가가 폭등하기도 했다.

국내 카드사들은 구체적인 스테이블코인 도입 방법이 나오지 않은 만큼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사 결제망을 통하지 않고 스테이블코인 결제가 가능하다면, 신용부문을 제외한 결제 시장은 잠식될 수 있다”라면서도 “신용카드 수익성이 크기 때문에 당장 시장에서 배제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비자가 코인업체들과 제휴해 망 내에서 스테이블코인 결제가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라며 “국내 카드사들도 당장 이런 방법을 고민할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