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손민균

한국 인터넷전문은행이 해외 진출 첫발을 내디뎠다. 카카오뱅크가 참여한 컨소시엄이 태국 가상은행 인가를 획득하면서 해외 사업의 물꼬가 트인 것이다. 카카오뱅크에 이어 토스뱅크도 해외 시장 공략을 선언하며 인터넷은행의 사업 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다만 한국 인터넷은행의 낮은 인지도와 국내 규제로 인한 사업 제한은 넘어야 할 산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태국 재무부와 중앙은행은 태국 금융지주 SCBX가 주도하고 카카오뱅크가 참여한 컨소시엄을 가상은행 최종 사업자로 지난 19일 선정했다. 태국의 가상은행은 오프라인 영업점을 운영하지 않은 은행으로 한국의 인터넷은행과 비슷한 사업체다. 가상은행 법인은 올해 3분기에 설립되며 내년 하반기 중 본격적인 영업을 개시할 예정이다. 카카오뱅크는 가상은행의 지분 20% 이상을 확보하며 SCBX에 이어 2대 주주가 된다.

카카오뱅크의 태국 가상은행 참여는 국내 인터넷은행이 해외에서 직접 사업을 펼치는 첫 사례다. 앞서 카카오뱅크가 인도네시아의 슈퍼뱅크에 지분 10%를 투자한 적이 있으나, 기술 자문 등 간접적인 사업 참여에 그쳤다. 반면 태국 가상은행 사업에선 카카오뱅크가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을 주도하고 금융상품 개발에도 참여하는 등 전면에 나설 예정이다.

2023년 6월 태국 SCBX와 카카오뱅크가 태국 가상은행 컨소시엄 협업을 발표했다. 사진은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왼쪽)와 아르시드 난다위다야 SCBX CEO(오른쪽). /SCBX 제공

카카오뱅크의 태국 가상은행 영업은 국내 인터넷은행들의 해외 진출 신호탄이다. 토스뱅크는 앞으로 3~5년 내 해외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상태다. 국내 금융사들이 동남아 시장을 집중 공략하는 것과 달리 토스뱅크는 금융 선진국도 선택지로 고려하고 있다. 지난달엔 이은미 토스뱅크 대표와 경영진들이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해 현지 금융사들과 만나기도 했다.

인터넷은행이 글로벌 시장 안착을 위해 먼저 풀어야 할 숙제는 인지도 제고다. 한국 인터넷은행의 해외 진출은 다른 국가 인터넷은행과 비교해 늦은 편이다. 영국의 리볼트는 2019년 글로벌 시장으로 영역을 넓혀 현재 5000만명 고객을 확보했다. 일본의 세븐은행은 2012년 미국 현지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설치 기업을 인수하며 ATM을 통한 진출 전략을 내세우는 중이다. 지난해 세븐은행이 전 세계에 설치한 ATM은 1만6000여대에 달한다. 이들과 비교해 막 해외 진출 걸음마를 뗀 한국의 인터넷은행들의 존재감은 약할 수밖에 없다.

이외 국내 규제는 규모의 성장을 더디게 하는 요소다. 현행법상 인터넷은행은 중소기업을 제외한 법인 대상 대출·신용 보증을 취급할 수 없다. 해외에 회사를 세우더라도 대출을 통한 자금 지원 길이 막힌 셈이다. 인터넷은행 입장에선 대출이라는 지름길을 두고 지분 투자라는 돌아가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여은정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출 공급은 지분 투자와 비교해 절차가 간소하고 현지 국가의 지배구조 규제에 저촉되지 않는다”며 “신용 공여로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방안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