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을 구매하는 것만으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 중 하나인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시대가 열렸다. 현실의 금융상품을 토큰으로 만들어 전 세계 누구나 24시간 손쉽게 거래할 수 있는 실물자산토큰(RWA)이 대중화하고 있는 것이다.
17일 RWA 시장을 분석하는 플랫폼 캐슬랩스(Castle Labs)에 따르면, 토큰화된 미 국채 시장 규모는 전날 73억달러(약 9조9400억원)를 넘어섰다. 올해 1월 41억달러(약 5조5800억원)였던 점을 고려하면, 약 6개월 만에 78% 성장한 것이다. 전날 기준 미 국채 토큰의 연평균 수익률은 4.14%로 추정된다.
이 시장의 선두 주자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다. 블랙록이 미 국채를 토큰화하기 위해 지난해 3월 조성한 펀드(비들·BUIDL)의 시가총액은 28억8700만달러(3조9300억원)로 유사 펀드 중 가장 많았다.
투자자는 ‘비들’이라는 토큰을 구매해 미국 단기 국채와 환매조건부채권(RP), 은행 달러 예금 등 초저위험 자산에 투자할 수 있다. 1년 365일 24시간 언제든 토큰을 구매해 투자하고, 토큰을 매각해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이다. 비들은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사모 형식의 펀드다. 수익률은 공식 집계되지 않았으나 연평균 4% 이상으로 알려졌다.
투자자는 USDC로 비들 토큰을 구매할 수 있다. USDC는 달러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으로, 1USDC는 1달러와 같은 가치를 지닌다. USDC는 가상자산 세계에서 통용되는 달러이자 기축통화인 셈이다. 투자자는 보유한 현금(달러)을 USDC로 바꾼 뒤 비들 토큰을 구매하는 것으로 투자를 끝낼 수 있다.
블랙록은 투자자에게 받은 USDC를 다시 현금(달러)으로 바꾸고, 이를 조성한 펀드에 투입시켜 미 국채 등에 투자한다. 투자자→USDC→달러→블랙록 펀드→미 국채 순서로 투자자의 자금이 미 국채로 흘러 들어간다.
블랙록이 미 국채 투자로 수익을 내면, 투자자에게 수익만큼의 비들 토큰을 지급한다. 투자자는 현금이 아닌 토큰으로 매월 이자를 받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토큰 보유량이 늘어나면(이자가 쌓이면) 이를 블랙록에 매각해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비들 토큰 1개 가격은 1달러로 고정돼 있다. 비트코인처럼 가격 변동에 따른 손실·수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됐다.
이러한 투자 방식은 당장 기관 투자자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대중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 토큰화된 미 국채 시장에서 시가총액 2위(9945억원)를 기록 중인 토큰 벤지(BENJI)는 공식적으로 일반 투자자도 구매할 수 있다. 비들과 마찬가지로 벤지 토큰을 구매하면 미 국채 등 초저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구조다. 벤지는 운용자산이 1900조원에 달하는 자산운용사 프랭클린템플턴이 운용하고 있다.
금융상품을 토큰화한 이유는 거래 과정을 효율적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미 국채에 투자하면 실제 결제에는 영업일 기준 1~3일이 소요된다. 환매·청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거래 과정에서 증권사 등 여러 기관이 관여하게 되면서 수수료 등 비용이 발생한다.
반면 미 국채를 토큰으로 거래하면 즉시 결제가 가능하다. 주말·공휴일 관계 없이 24시간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토큰을 전송하는 데 드는 수수료와 블랙록·프랭클린템플턴 등 자산운용사에 지급하는 펀드 운용 보수 외에는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는다.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누구나 접근하기 어려웠던 금융상품에 투자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이러한 RWA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 일가가 운영하는 월드리버티파이낸셜이 블록체인 기술 기업 온도파이낸스의 미 국채·달러 토큰을 꾸준히 매수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온도의 미국 단기 국채 토큰(OUSG)은 시가총액 9600억원으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달러토큰(USDY)의 시가총액(9200억원)까지 합하면 사실상 블랙록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