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의 암 보험금 미지급(부지급)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삼성생명과 보험 가입자들이 요양병원 입원비 지급을 놓고 분쟁을 벌이다 최근 들어 일단락됐는데, 이번에는 DB손해보험이 비슷한 이유로 보험금을 주지 않았다며 가입자들로부터 원성을 받고 있다.
2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암 치료를 받고 DB손보로부터 실손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한 가입자들은 지난달 ‘DB 암 실손 부지급 피해자 모임’을 결성했다. 이들은 오는 31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DB손보 본사 앞에서 30여명 규모로 ‘약관대로 보험금을 지급받기를 원한다’는 내용의 항의 집회를 열 예정이다.
이 모임을 이끄는 A씨는 “단체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당장 집회 인원은 30여명뿐이지만 피해자는 훨씬 많다”며 “그동안 피해자들이 DB손보 뿐 아니라 금융감독원 등에 민원을 여러 차례 넣어도 해결이 되지 않아 결국 모임을 만들고 집회까지 열게 됐다”고 말했다.
이 모임에 합류한 대다수는 위암, 림프암, 유방암 환자 등이다. 항암 치료와 수술 후 요양병원에 입원해 치료했는데 수술이 끝났다는 이유로 입원 실손 보험료 부지급 통보받았다는 게 피해자 모임 측 주장이다.
A씨에 따르면 DB손보 측은 “항암이 끝났다, 항암 후 ‘완전 관해(암이 완전히 사라짐)’ 소견을 받았다, 최초 치료 1년은 요양 병원 실비를 지급했지만 면책 기간 이후 2년차 요양병원은 치료로 인정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실손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암 환자는 암을 제거하더라도 높은 재발·전이 위험이 있어 국가에서도 중증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5년을 보장해줬고 암 요양병원 역시 입원이 가능하다”면서 “암 잔존 여부로 단순히 암이 완치되었다고 판단할 수 없는데 약관이나 명확한 기준도 제시하지 않은 채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DB손보 측은 해당 문제를 인지하고 있고, 내부적으로 자세한 확인을 거쳐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DB손보 관계자는 “최근 실손보험 누수를 막기 위해 금감원이 관련 모범 규준을 강화했다”며 “이러한 기준에 맞춰 보험금 지급 유무가 결정되는 사항으로 고의적인 보험금 부지급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DB손보에 앞서 삼성생명도 지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암보험금 부지급으로 인해 소비자들과 분쟁을 벌였다. 가입자들은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 환우모임(보암모)’를 결성하고 삼성생명을 상대로 수차례 소송을 제기했고, 삼성생명 고객센터를 점거해 500일 넘게 집회를 이어가기도 했다.
삼성생명의 보암모의 분쟁도 DB손보와 마찬가지로 요양병원에서의 입원 치료를 ‘암의 직접 치료’로 볼 수 있느냐는 문제로 시작됐다.
지난 2020년 대법원이 “요양병원 치료가 암 치료와 직접 연관성이 없으므로 약관에 따른 암 입원비 지급 사유가 없다”고 판단하면서 삼성생명은 최종 승소했다. 보암모 회원들도 삼성생명과의 합의를 통해 시위를 중단했다.
그러나 이후 금융감독원은 삼성생명에 대한 종합검사를 통해 약 500여건(520억원)의 암 입원 보험금 청구를 부당하게 지급을 거절했다는 사실을 적발했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삼성생명이 암보험 부지급건은 보험업법을 위반했다”며 기관 경고 중징계와 함께 과징금 1억5500만원을 부과를 의결했다. 기관 경고로 마이데이터 등 금융당국 허가가 필요한 신사업 진출도 1년간 막혔지만, 삼성생명은 이를 항소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암 보험 부지급 문제는 비단 일부 보험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험사들의 ‘약관상 면책 및 부책’을 사유로 가입자들의 보험금 청구가 거절되는 사례는 계속 늘고 있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국내 생명보험사의 올해 상반기 보험금 부지급 건수는 5850건으로 지난해 전체 건수(5863건)와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하반기 부지급 건수까지 합산할 경우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중 57%가 약관상 면책 및 부책으로 인한 거절로, 지난 2020년 상반기(38%)와 비교해 19%포인트(p) 증가했다. 악관상 면·부책으로 인한 보험금 부지급이란 가입자가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해당 치료 내용이 약관에서 보장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급이 거절된 것을 의미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암 환자가 증가하면서 보험금 청구 건수도 늘어 보험사들 입장에서도 적자를 줄이기 위해 지급 기준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