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뭔지 아세요? 제가 투자한 바이오 기업들의 로고를 스티커로 만든 거에요.”
지난 달 중순 서울 삼성동 컴퍼니케이파트너스에서 만난 이강수 투자부문 대표는 노트북을 빼곡히 뒤덮은 스티커를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으며 뿌듯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마치 자식 자랑하는 아버지가 지을 법한 표정이었다.
20여년 경력의 바이오 투자 전문가인 이 대표는 벤처캐피털(VC) 업계에서 ‘덕장’으로 통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 벤처캐피털리스트 모임의 좌장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같은 회사는 물론 타 VC 후배들에게도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이 대표는 ‘공부하는 벤처캐피털리스트’로도 잘 알려졌다. 바이오 투자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삼성융합의과학원 박사 과정에 뛰어들었다. 투자 활동을 하면서 연구실에 몸담아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에도 “내가 하는 것은 우리 연구실 동료들의 100분의 1도 안 된다”며 겸연쩍게 웃어 보였다.
이 대표가 이끄는 컴퍼니케이파트너스는 바이오 분야는 물론 ICT 영역에서도 트렌디한 기업을 빠르게 알아보고 투자하는 VC다. 고바이오랩,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안트로젠, 네오펙트, 지니너스 등의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기술력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상장까지 이끌었으며, 인공지능(AI) 기반 토익 학습 플랫폼 뤼이드, 채용 플랫폼 원티드랩, 리워드 광고 플랫폼 버즈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운영하는 왓챠, 다중채널네트워크(MCN) 샌드박스네트워크 등 탄탄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지난해 투자 실적을 간략히 소개한다면.
“작년 한해 동안 총 1272억원 규모의 투자를 집행했다. 전체의 60%가 ICT 분야에, 40%가 바이오 및 헬스케어 분야에 투자됐다. 연간 회수 금액은 총 808억원을 기록했다. 투자 원금이 276억원이었으니 전체적으로 3배의 수익을 낸 것이다. 특히 지난해 말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고바이오랩을 통해 380억원을 회수해, 투자 원금 대비 6배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와이팜, 에이디엠코리아, 원티드랩 역시 작년 상장을 통해 엑시트(투자금 회수)한 피투자사들이다.
올해는 2014년 결성된 200억원 규모의 ‘컴퍼니케이챌린지펀드’가 9월 중 만기를 앞두고 있다. 잔여 자산 처분 기간까지 고려하면 내년 중 청산이 완료되는데, 초기 설정액의 4배에 달하는 수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 2018년에 결성한 863억원 규모의 ‘컴퍼니케이유망서비스펀드’도 약 4배 불어난 상태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2000억원을 투자한 뤼이드에도 초기 투자하지 않았나. 이 회사 투자금도 엑시트를 했는지.
“비전펀드가 기업가치 8000억원을 기준으로 2000억원을 투자했는데, 그때 구주를 매각하지 않고 계속 보유하고 있다(비전펀드의 투자를 받을 당시 뤼이드의 기업가치는 컴퍼니케이파트너스가 투자했을 때보다 20배 가량 높았다).”
아직 엑시트하지 않은 회사 중 기업가치가 많이 오른 곳은.
“부동산 중개 플랫폼 직방이 특히 많이 올랐다. 재작년 만기가 도래한 펀드를 청산할 당시 투자원금 중 일부인 10억원을 20배인 200억원에 회수한 바 있다. 지금은 기업가치가 그때보다 더 많이 올라, 최초 투자 시점을 기준으로 30~40배 가량 상승했다. 그 외에 전자책 플랫폼 ‘리디북스’를 운영하는 리디에 투자해 약 10배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컴퍼니케이파트너스는 전통적인 하드웨어 산업보다는 트렌디한 ICT 스타트업을 선호하는 것 같다.
“2014년부터 ICT 분야의 플랫폼이나 소프트웨어에 많이 투자해왔다. 전체 투자의 50%가 해당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바이오·헬스케어의 투자금 비중은 30~40%, 나머지 10~20%는 ICT 제조업에 투자하고 있다. 소재나 부품 제조업에도 투자를 하고 있긴 하지만 다른 VC들에 비해 비중이 높은 편은 아니다.”
올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유럽중앙은행(ECB) 등이 본격적인 긴축에 나서며 자산시장이 조정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많이 나온다. 스타트업 시장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비상장 스타트업 시장의 투자 심리도 당연히 영향 받는다. 비상장 기업의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 평가를 할 때 동종 업계 상장사들과 비교하는 작업이 선행되기 때문에, 상장 주식 시장이 조정 받으면 장외 시장의 하락도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VC들 대부분 투자 전략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시기다.”
상장 시장과 비상장 시장의 조정은 얼마 정도의 시차를 두고 이뤄지는지.
“보통 3~4개월에서 길면 6개월 정도의 시차가 존재한다. 이 기간은 VC가 기업설명(IR)을 통해 밸류에이션을 산정한 후부터 투자금을 납입할 때까지의 기간과 거의 같다. 밸류에이션을 한번 정하면, 설령 투자금 납입 전까지 주식 시장이 급랭되더라도 해당 조건에 따라 투자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3~4개월 동안은 비상장 기업의 밸류에이션 유지를 보장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시장이 조정기에 접어들면 스타트업 간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이 나온다. 그러한 견해에 동의하는지.
“투자금의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좋은 회사는 밸류에이션이 다소 높아도 여러 VC들이 투자하려 할 테고, 그렇지 않은 회사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만 해도 이미 투자해 기업 가치가 많이 오른 업계 상위권 스타트업에 후속 투자를 많이 집행하고 있다. 전체 투자금의 3분의 1을 포트폴리오사에 후속 투자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고바이오랩의 경우 3번을, 직방과 리디는 횟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투자했다.”
후속 투자를 통해 성공적인 결과를 얻으려면 초기 투자를 잘 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겠다.
“그렇다. 초기 기업을 발굴하기 전 먼저 성장성이 높은 산업을 선정한 뒤 최적의 업체를 골라 투자하고, 해당 기업이 가치 창출을 잘 해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가치 창출을 잘하는 VC들은 초기 투자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시리즈B에 투자할 때는 시리즈A에 어떤 VC들이 투자했는지를 꼭 확인하는 경향이 있다. 초기 투자사는 좋은 인재의 영입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기업의 내부 통제를 잘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만 스타트업이 모양새를 잘 갖추고 더 높은 밸류에이션을 인정 받을 수 있다.”
초기 기업에 투자할 때 어떤 부분을 눈여겨보나.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회사를 좋아한다. 기업은 언제든 사업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 경우 유연성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표이사가 생각하는 바를 직원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컴퍼니케이파트너스는 올해도 적극적인 투자를 지속할 계획인지.
“상장 시장의 조정이 프리(pre)IPO 등 후기 투자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 여파가 초기 기업까지 넘어오려면 어느 정도 긴 시간이 걸린다. 초기 투자는 올해도 적극적으로 계속할 것이다. 다른 금융기관들과 달리 VC만이 가진 강점은 시간을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VC는 보통 8년 만기의 폐쇄형 펀드를 운용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은 출자자가 돈을 회수할 수 없다. 즉 VC 입장에서는 8년의 운용 권한을 보장 받는 셈이다.
만약 1~2년 뒤 회수해야 하는 사업 모델이라면 피투자사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는데도 불가피하게 조기 엑시트에 나서야 하겠지만, VC는 어떤 기업이나 산업의 초기 단계에 과감하게 투자해 시간을 벌 수 있다. 예를 들어 리디는 우리가 투자할 당시에는 전자책 사업을 하는 회사였지만, 지금은 웹툰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자책 못지 않게 크다.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주력 사업이 바뀌기도 하고 기존 사업 모델을 고도화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벤처캐피털리스트 중에서도 손꼽히는 바이오 투자 전문가 아닌가.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의학 분야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삼성융합의과학원 2017학번이다. 석·박사 통합 과정을 수료했고 지금은 소화기내과 강원석 교수님 연구실에 소속돼있다. 간암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기초 연구를 하고 있다. 직접 공부를 해보니 연구자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됐고, 그들이 사용하는 말이나 용어에도 훨씬 더 친숙해졌다. 적지 않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굉장히 재미있다.”
박사과정이 바이오·헬스케어 투자에 도움이 된 구체적인 사례가 있는지.
“일례로, 암 유전체 진단 업체 지니너스에 투자하는 계기가 됐다. 지니너스는 개인의 유전체를 분석해 각자에게 가장 잘 맞는 약을 개발해주는 플랫폼을 만든다. 유전체의 특징과 표현형을 분석하기 때문에 바이오인포매틱스(생물정보학) 기술을 필요로 한다.
지니너스는 지난 2018년 삼성서울병원의 사내 벤처로 출발해 1호로 분사됐다. 유전체학을 전공한 박웅양 교수님이 설립하셨는데, 내가 박 교수님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던 데다 삼성병원의 창업심의위원회 멤버로 활동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회사에 대해 알게 됐고, 이후 투자를 결정했다. 총 77억원을 투자했으며 올해 중 엑시트할 계획이다.”
요즘 제약 및 바이오 스타트업이 상장 문턱을 잘 못 넘어 전반적인 투자 심리가 많이 위축됐다고 들었다. 올해 바이오 분야의 투자 전망은.
“산이 높으면 골이 깊기 마련이다. 또 골이 있어야 산이 생길 수 있는 것 아니겠나. 바이오 스타트업의 위기는 기업 간 옥석 가리기를 낳을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기업의 전반적인 수준이 높아지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실제로 국내 바이오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기술 수준은 제2의 도약기였던 2013년에 비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이 원하는 수준의 데이터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기술이 고도화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등장한 바이오 스타트업 중에서는 미국이나 유럽의 글로벌 기업들과 기술 격차가 별로 없는 훌륭한 회사들도 많다.
바이오 중에서도 특히 트렌디하고 새로운 산업은 기업 간 기술 격차가 작다. 치료제의 개발을 시작한 지 10년이 채 안 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바이옴(미생물과 생태계의 합성어로 인체 내 100조개의 미생물과 유전자를 가리킨다) 기술은 미국 세레스가 임상 3상까지 진행하며 선도하고 있는데, 국내 스타트업인 고바이오랩이 임상 2상에 진입하며 바짝 추격하고 있다. 더욱이 고바이오랩은 대표를 맡고 있는 고광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님이 미 하버드대에서 공부하셨기 때문에 미국 기업들과의 기술 격차를 크게 좁힐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투자한 오가노이드사이언스도 인공 장기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 기술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에 미국과 일본, 유럽, 우리나라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분야다. 바이오 스타트업에 똑똑한 인재들도 많고 연구 성과도 많이 축적돼있기 때문에 펀더멘털(동력)은 굉장히 강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플랫폼 분야는 올해도 유망할까.
“물론 유망한 섹터다. 커머스뿐 아니라 중개자 역할을 하는 플랫폼 시장이 더욱 성장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투자한 셀렉트스타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업체와 데이터를 검증하는 전문가들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이다. 영상에서 어떤 것이 사람이고 어떤 것이 개, 자동차, 사물인지 식별하는 전문가들에게 데이터 검증을 대신 의뢰하고, 딥러닝을 기반으로 틀린 답을 빠르게 걸러낸 후 소프트웨어 개발사에 다시 돌려준다.
임상병리 자료의 어노테이션(영상이나 사진 데이터에서 특정 형상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식별하는 것)도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예를 들어 DNA 샘플을 염색한 뒤 자른 단면을 보며 ‘이것은 적혈구이고 이것은 혈관’이라는 식으로 답을 달아줘야 한다. 의사나 병리학자가 답을 달면 AI가 수천 장의 이미지를 학습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도 전문가와 데이터 제공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그 외에 유망할 것으로 기대되는 업종은.
“우선 AI가 중요할 것이다. 전기차 배터리의 매니지먼트 시스템만 해도 AI를 통해 가동된다. 또 미국 소비자가전박람회(CES)가 트렌드를 굉장히 잘 읽는데, 올해 디지털헬스케어 기업의 CEO가 기조연설을 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는 기술 개발보다도 의료보험 체계 등 제도권과의 사회적 합의가 어렵다는 것이 한계였는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그런 한계가 많이 극복됐다.
미국도 코로나19 때문에 진단 의료의 원격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닥터나우 같은 원격 진료 플랫폼이 급성장할 수 있었다. 약사들도 이 같은 변화를 배척하는 대신 능동적으로 참여하려 한다는 것이 매우 고무적이다.”
컴퍼니케이파트너스가 추구하는 차별점이 있다면.
“구주 투자보다는 창업자 중심의 신주 투자를 주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창업자들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회사 외부에 있는 최고정보책임자(CIO)로서 사업을 같이 해나간다는 느낌이다. 또 정량화가 어려운 초기 기업에 많이 투자하다 보니 심사역 개인의 역량이 매우 중요해, 투자심의위원회에서 막내 심사역도 대표와 동등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 컴퍼니케이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