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호감으로 여겨지던 게임 광고를 찾아보게 만든 곳이 있다. 과거 최현석, 안정환이 등장한 캐논 광고로 이름을 알린 광고 제작사 ‘돌고래유괴단’이다. 서부극을 콘셉트로 배우 이병헌이 나오는 브롤스타즈, 유아인과 신구가 아동 연극무대에 등장하는 그랑사가 등 이곳에서 만든 게임 광고는 ‘믿고 보는’ 광고로 통한다.

유튜브 총 조회 수가 한 달 만에 500만회를 넘기며 각종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게임 던전 앤 파이터 광고 ‘출동! 아라드 레인저!’를 제작한 돌고래유괴단의 이민섭 감독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돌고래유괴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돌고래유괴단 공채 1기 출신인 이 감독은 던전 앤 파이터 광고를 비롯해 백종원이 100명 나오는 넥슨 ‘V4’, 수많은 짤(사진)을 생성했던 스노우카메라 ‘관종(관심에 목내는 사람)의 난’ 등을 제작했다.

돌고래유괴단의 이민섭 감독.

이 감독이 제작한 던전 앤 파이터 광고 ‘출동! 아라드 레인저!’ 영상 길이는 5분 54초다. 15초짜리 광고도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 현실이지만, 이 광고엔 ‘게임 광고 처음으로 끝까지 다 봤다’, ‘다른 영상 앞에 나온 게 재미있어 다시 보러 왔다’ 등 댓글만 1000개가 넘게 달렸다.

과거 유행했던 특촬물(슈퍼 히어로나 괴수가 등장하는 특수 효과를 살린 영상물) 콘셉트의 이 광고는 코로나19 사태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다섯 명의 히어로들이 ‘던전 앤 파이터’ 광고 제안을 받아 광고를 제작하기까지 과정을 담았다. 배우 전국환, 조우진 등이 나와 당시 과장된 말투와 행동, 어색한 특수 효과 등 클리셰를 살려 재미를 더했다는 평이다.

이민섭 감독이 제작한 던전 앤 파이터 ‘출동! 아라드 레인저!’ 편.

-보통 TV 광고는 15초, 30초가 대부분이다. 소비자를 광고에 잡아두는 방법이 있다면.

"소비자의 마우스는 이미 스킵(skip·넘어가기) 버튼에 가 있다. 광고를 넘길 생각을 못 하게 하고 붙들어 놓는 것이 미션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5초 안에 재미로 승부를 내야 한다. 모두가 이 영상이 광고라는 걸 알고 있지만, 어떤 제품 광고인지 모르게 하는 스킬이 필요하다. 그래서 주로 영화나 웹드라마처럼 만든다. 광고가 아닌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 소비자들이 원래 보려던 영상 대신 보게 하는 것이다."

-이번 광고를 통해 던전 앤 파이터의 어떤 점을 알리고 싶었나.

"게임 광고가 그게 참 어렵다. 광고는 광고주가 알리고 싶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게 목적인데, 디지털 광고는 TV 광고와 다르다. TV 광고보다 소비자가 쉽게 안 볼 수 있고, 대상도 불특정 다수다. 던전 앤 파이터의 경우 오래된 게임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기에 전문적인 게임 정보 설명보다는 대중이 즐길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만약 게임 이벤트 설명을 했다면 던전 앤 파이터를 하는 사람만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동안 게임 광고는 인기가 없었다.

"게임 광고 대부분이 천편일률적으로 유명한 연예인이 나와 재미없게 게임을 설명하는 형식을 취해 왔다. 여기에 돌고래유괴단의 강점인 기존 이미지를 깨는 전략이 통했다. 많이 아는 캐논 광고 역시 기존에 가수 비가 나왔던 니콘 광고를 비튼 것이다. 멋있는 이미지가 있는 모델을 망가뜨리는 등 비트는 전략이 소비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민섭 감독이 제작한 넥슨 V4 ‘백종원이 알려주는 자기관리 비법’ 편.

-이번 광고가 젊은 층에 인기가 많다.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우리에게 바이럴은 목표다. 돌고래유괴단은 이른바 ‘영업’이 없어 그동안 만든 작품을 좋게 본 광고주가 연락을 주셔서 일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바이럴이 안 되면 안 된다고 항상 생각한다. 게임 광고는 보통 ‘이거 광고할 돈으로 더 좋은 아이템 만들어라’와 같이 어떻게 하든 욕을 먹는 분위기인데, 이번 광고의 경우 ‘재밌다’는 반응이 많아서 좋았다."

-광고주를 설득하는 게 힘들 것 같은데.

"설득하는 방법은 돌고래유괴단의 과거밖에 없다. 이전에 만들어 좋은 반응을 얻었던 광고가 설득의 도구인 셈이다. 최근엔 광고주도 돌고래유괴단 스타일을 알고 연락을 주시기에 어렵지 않다. 영상 길이 문제도 사실 내부에서는 4분까지는 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긴 영상을 설득하는 한 가지 팁이 있다면 영상 시사회에서 길이를 먼저 말하지 않는 것이다. 광고주에게 몇 분짜리인 것 같은지 물어보면 대부분 실제 길이의 반절을 말한다. 나중에 실제 길이를 알게 되면 우려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영화 형식에 B급 유머를 녹여내는 게 매력인 것 같다. 이같은 형식을 택하게 된 배경은.

"연극영화과를 나온 영향이 큰 것 같다. 광고 제안을 받으면 영화 만들 때처럼 가장 먼저 호러, 사극, SF 등 세계관을 짠다. 여기에 어떤 상황이 들어가면 엉뚱하면서 재미있을지 생각한다. 광고를 찍기 전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모여 대본 리딩을 하기도 한다. 다만 사회적 약자는 희화화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다. 얼굴 보정 애플리케이션(앱) 스노우카메라 광고를 만들 때도 이 점을 고려하면서도 앱의 특징을 살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민섭 감독이 제작한 스노우카메라 ‘관종의 난’ 편.

-게임 외에 광고를 만들고 싶은 분야가 있는지.

"자동차와 뷰티 광고다. 이들 업계 광고는 다소 보수적이라 나오는 인물과 정해진 형식이 있다. 그래서 이같은 기존 문법이 확고한 분야의 광고를 제작하면 해체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최근 광고시장의 변화 중에 눈에 띄는 흐름은 무엇인가.

"돌고래유괴단이 바이럴 광고의 최전선에 있는 입장에서 광고가 점점 콘텐츠화되어가고 있다고 본다.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되는’ 광고를 원하는 광고주들이 많아졌다. 똑같이 한정된 금액을 투자해도 TV에 나오고 마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계속해서 회자되는 최대한의 파급효과를 원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광고는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

"콘텐츠화된 광고가 더 많아질 것 같다. 소비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소통하는 광고가 늘어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콘텐츠화를 택하지 않은 광고는 영미권처럼 부가적인 것을 다 빼고 정보 전달에만 집중하는 담백한 모습으로 갈 것 같다. 애매한 광고가 사라지고 양극화된 광고만 남는 것이다."

-돌고래유괴단이 나아갈 방향은.

"다소 먼 얘기일 수도 있지만, 돌고래유괴단 유튜브 계정에 광고 말고도 다양한 콘텐츠를 시도해보려고 한다. 직원들이 작업하는 브이로그 형식의 영상일 수도 있고, 소비자들이 궁금해하는 점이나 출연 배우 시점으로 광고를 본 느낌 등을 담은 영상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