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추행 피해자인 미성년자가 재판이 빨리 끝나길 바라는 주변의 압력에 못 이겨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제출한 ‘처벌불원서’는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일러스트=정다운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상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강모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3년에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기관과 장애인복지시설 등 3년간 취업제한을 선고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고 24일 밝혔다.

강씨는 2015년 겨울 경기 안산 단원구에서 옆집에 사는 나이 어린 미성년자를 두차례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새벽 시간 신문배달을 위해 피해자의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강씨는 2018년 9월 구속기소됐다. 같은해 10월 피해자 아버지는 강씨와 합의했고, 피해자는 법원에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

1심 재판부는 "죄질이 좋지 않고 범행으로 피해자가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양형에 반영했다. 재판부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고, 선고에 따라 강씨는 석방됐다.

검찰은 형량이 너무 가볍다며 항소했다. 강씨의 처벌을 바란다던 피해자는 2019년 5월부터 1년여동안 2심 재판이 이어지면서 심신이 지친 피해자는 자신의 변호인에게 ‘옆집 아저씨(강씨) 용서해줄게요’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법원에 처벌불원서도 다시 제출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강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 진심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이 빨리 마무리되길 바라는 주변의 압력을 의식해 어쩔 수 없이 가해자의 처벌불원서를 냈다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법원이 피해자를 면담한 결과 용서의 의사표시는 사건 조기 종결을 바라는 주변의 압력을 의식해 이뤄진 것이고 사실은 강씨의 처벌을 바라는 것에 가깝다"며 "피고인이 지속적으로 선처를 요구해 피해자는 자율적 판단이 어려운 상태에 이르러 자신의 변호사에게 판단 방향을 묻기까지 했다"고 했다.

이어 "처벌불원서가 제출되기 직전 피해자가 느낀 심리적 부담과 곤경 등에 비춰볼 때 처벌불원서에 기재된 피해자의 용서는 진실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이에 강씨는 양형부당으로 대법원에 상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피해자가 나이 어린 미성년자인 경우 처벌불원의 의사표시에 피해자 본인의 의사가 포함되어 있는지는 대상 사건의 유형 및 내용, 합의의 실질적인 주체 및 내용, 합의 전후의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며 "이 사건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가 진실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본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