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의 사령탑 역할을 하는 기획재정부에서 엘리트 관료가 공직을 떠나는 일이 연례 행사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본거지를 세종시로 옮긴 지난 2013년 이후 기재부에서는 ‘장래의 장·차관감’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핵심 인재들이 공직을 그만두는 일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올해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보좌했던 김정관 전 부총리 정책보좌실장(국장급·정책기획관)이 공직을 떠났습니다. 기재부에서 본부 국장급이 민간으로 이직하기 위해 사표를 낸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파장이 더 크다는 분위기입니다.
28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김정관 전 국장(사진)은 지난 10일부터 두산 DLI 전략지원실 부실장(부사장)으로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김 전 국장은 지난 8월말 사표를 제출한 뒤 지난달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를 통과했습니다.
행정고시 36회 출신인 김 전 국장은 기재부 내 경제정책통으로 꼽힙니다. 국채과장을 역임한 후 경제정책국으로 자리를 옮겨 사회정책과장, 경제분석과장, 종합정책과장을 거쳤습니다. 경제정책국 종합정책과장은 정부 경제정책을 실무적으로 총괄하는 자리입니다. 이 때문에 기재부 내부에서는 이 자리를 거쳐간 인사들을 장래의 장·차관 후보로 꼽습니다.
김 전 국장은 한국은행에 파견돼 금융시장국 자본시장부장으로 근무했던 2016년 이주열 총재로부터 특별공로상을 받을 정도로 ‘열정있는 관료’로 인정받았습니다. 주가, 환율, 채권금리 등 가격지표를 정리하는 차원을 넘어 한은 직원들이 시장 관계자들과 접촉해서 얻은 현장감 있는 정보를 데이터로 담은 ‘마켓 인텔리전스(Market Intelligence)’ 체계를 구축한 공로로 이 상을 받았습니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책통으로 촉망받는 에이스였는데, 민간으로 자리를 옮겨 부총리를 비롯한 선후배들이 매우 아쉬워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기재부에서는 세종시로 옮긴 후인 2015년부터 엘리트 공무원들의 조직 이탈이 연례행사처럼 되고 있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2015년 동기 중 승진이 가장 빨랐던 박주언 서기관(행시 46회)이 퇴직해 두산그룹 상무로 취직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최원진 서기관(행시 43회)이 사모펀드(PEF)인 JKL파트너스로 옮기며 기재부를 떠났습니다. 최 서기관은 2007년 자본시장통합법이 제정됐을 당시 법 해설서를 썼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던 인물입니다.
2016년 부터는 장차관 후보군이라고 할 수 있는 주요 국실 총괄과장 출신들이 기재부를 떠나는 일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2016년 4월 국제금융과장 출신 김이태 전 부이사관(행시 36회)이 삼성전자로 옮겼고, 같은해 9월에는 박준규(행시 41회) 전 국제기구과장이 삼성경제연구소 임원으로 영입됐습니다. 지난해 1월에는 정책조정총괄과장 출신인 나석권 전 통계청 통계정책국장(행시35회)이 SK경영경제연구소로 이직했고, 7월에는 강길성 전 재정건전성관리과장(행시 40회)이 LG전자 상무급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IMF(국제통화기금) 파견 경력이 있는 핵심 인재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국제기구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을 정도로 거시·금융정책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인재들이 공직을 떠났다는 얘깁니다.
관가에서는 관료를 주요 국정 결정과정에서 배제하는 ‘관료패싱’이 멈추지 않는 한 공직사회에서 핵심 인재 유출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관료를 도구화시키는 분위기가 엘리트 유출의 원인이라는 얘깁니다. 최근처럼 규제혁신과 투자활성화, 노동시장 개혁 등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되살리려는 각종 정책 기획이 친(親)노동·분배위주 경제철학을 내세우는 집권층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는 일이 반복될수록 공직사회 인재 유출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겁니다.
최근 관가에서는 ‘늘공(늘 공무원·직업 공무원)이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이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주는 작업자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자조섞인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한 전직 경제부처 장관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관료들을 자신들의 국정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처럼 인식하는 최근의 분위기가 지속되면 엘리트 관료들이 공직을 지킬 이유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