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간 주인을 찾지 못했던 강남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 양재동 파이시티(옛 화물터미널 부지)가 조만간 주인을 찾고 개발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파이시티는 총 사업비만 2조4000억원대로 국내 최대 복합유통단지 개발 사업으로 추진될 예정이었지만, 시공사였던 성우종합건설과 대우차판매가 2010년 무너진 데 이어 시행사인 파이시티(인수 당시 경부종합유통)마저 2014년 10월 파산선고를 받았다.
닭고기 유통 업체로 유명한 하림이 이 땅을 거머쥘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하림은 이르면 이번 주 파이시티 매각 수탁사인 무궁화신탁과 매매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인수금액은 지난 1월 마지막으로 실시된 공매 최저가인 4525억원이다.
◆ 10여년 굴곡의 역사 보낸 파이시티
파이시티는 진로종합유통이 화물터미널로 사용했던 부지다. 진로그룹이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 땅도 경매에 나왔고, 시행사인 파이시티가 복합쇼핑·물류센터로 개발하기 위해 2004년 1월 사들였다. 파이시티는 2005년부터 9만6000㎡에 달하는 기존 부지에 백화점과 오피스, 물류시설 등이 포함된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유통단지 개발을 추진하고 나섰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이 사업의 발목을 잡았다. 건축 심의와 인허가 절차가 늦어진 데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자 비용은 불어났다. 시공사였던 성우종합건설과 대우차판매가 2010년 4월과 6월 각각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시행사인 파이시티도 2011년 1월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채권단은 2012년 포스코건설을 시공사로 정해 사업을 다시 추진했지만, 이명박 정부 실세의 인허가 로비 의혹까지 겹치면서 결국 사업은 무산됐다.
◆ “물류 거점 확보하라”…인허가·비용 부담도
부동산업계는 하림이 파이시티 부지를 확보해 어떤 방식으로 개발할지 관심이 많다. 일단 하림 측은 복합물류센터 부지를 짓는다는 계획이다.
하림 관계자는 “복합물류센터 부지를 찾고 있으며 파이시티도 그중 한 곳”이라며 “어떻게 이 부지를 사용할지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업계는 경부고속도로로 주요 도시에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양재동의 교통환경을 통해 하림이 물류 거점을 만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하림은 닭고기 유통뿐 아니라 홈쇼핑 등의 사업도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팬오션(옛 STX팬오션)까지 인수해 종합 물류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꾸준히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개발까지 걸림돌이 많다. 하림이 파이시티 부지를 사들이더라도 확정되지 않은 가이드라인과 토지 대금 외에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 부담, 부지 용도 전환과 인허가의 어려움 등을 극복해야 한다. 서울시는 파이시티 부지가 있는 양재동과 우면동 일대를 연구개발(R&D) 단지로 조성하기 위해 학술 용역을 진행 중이다. 시는 용역 결과를 토대로 6월 안에 파이시티를 포함한 양재동·우면동 일대 R&D 단지 개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4525억원의 토지 비용에 더해 기부채납과 연구개발 시설도 개발 계획에 포함해야 한다는 점도 하림 입장에선 부담될 수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이 마련되면 복합물류센터에서 R&D 시설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기부채납과 관련된 사항들도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다.
가이드라인이 나와도 개발 지침에 따라 도시관리계획을 변경하고 인허가를 받는 등의 절차가 남아 있어 부지를 사더라도 실제 개발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시관리계획을 변경하는 것이나 개발 인허가를 받는 것은 법적인 부분이라 관계자들의 협의가 필요한 만큼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