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턴 바(Western Bar)’, ‘포리너스 클럽(Foreigner’s Club)’, ‘레드 라이트(Red Light)’.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에서 차를 타고 10분 쯤 가면 옥포로가 나온다. 왕복 2차선 거리 양쪽에 외국인 전용 술집들이 모여 있다. 거제에서 속칭 '옥태원(옥포+이태원)'으로 통하는 곳이다.

11월8일 저녁 9시 ‘옥태원’을 찾았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하늘에서 부슬 부슬 빗방울이 떨어졌다. 으스스한 날씨였다. 거리에는 불빛이 가득했다. 외국어 간판이 많이 보였다. ‘내국인 출입금지'라고 못 박은 가게도 있었다.

일요일 밤 ‘옥태원 거리’에선 우리 말 보다 외국어가 더 많이 들렸다. 두 명 중 한 명은 외국인인 듯 했다. 그들은 혼자 걷거나, 둘 또는 넷이 짝지어 걸었다. 술 한 잔 하러 나온 대우조선 선주사 소속 외국인 감독관이거나 기술자들이었다.

‘옥태원’에는 유독 외국어 간판이 많았다

“영국, 덴마크, 스웨덴 등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많다.” 한 가게 주인이 귀띔했다.

‘옥태원’ 외국인들도 대우조선해양의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부산·울산·경남 지역내총생산(GRDP · Gross Regional Domestic Product, 시·도 등 광역자치단체 내에서 생산된 부가가치의 합)의 10%를 차지한다는 세계적인 조선회사. 그 회사의 부도를 막기 위해 한국 국책은행이 5조2000억원을 지원키로 했다는 소식에 그들도 자기 일처럼 아파하고, 걱정했다.

그들이 보는 대우조선해양은 어떤 모습일까?

“한국이 돈이 많아 돈을 쏟아 붓겠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그럴 돈이 있다면 차라리 경영 조직과 관리 체계를 바꿔야 한다. 다른 회사에 판다는 소식도 들리던데, 그런 기업을 누가 살지 솔직히 의문이다.”

북유럽에서 온 A씨는 “한국 기업은 최고위직 1명이 다 결정하고 나머지는 아무 소리 못하고 따른다. 가장 낮은 직원 의견도 듣는 민주적·수평적인 서구 문화를 따라 잡으려면 아직 멀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 특유의 수직적 문화, 위에서 시키면 아래는 따르는 문화가 오늘의 위기를 가져왔다”고 했다.

8일 밤 경남 거제 ‘옥태원’의 외국인들

은발 머리, 푸른 눈의 B씨는 말쑥한 남색 니트를 입고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대우조선의) 하청 업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관리하는 방식이 문제”라고 했다.

“하나의 프로젝트에 협력 업체 6곳이 투입되면, 자기들끼리 전혀 협력하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모두 나 몰라라 한다.”

그는 “하청업체 선정에는 실력이 아니라 경영진과의 친분이 더 우선하는 것 같다. 회사에 일 잘하는 하청 업체를 요구했더니, ‘약속이 돼있다’며 단숨에 거절 했다. 알고 보니 경영진과 친분이 있는 회사였다”고 했다.

실력 보다 연줄이 더 중요한 조직에서 무슨 희망을 찾겠냐는 지적이다.

유럽에서 왔다는 C씨는 “한 직원이 실수로 10억 달러 짜리 프로젝트를 망쳤다. 아무도 징계를 받지 않았다. 주인 없는 회사여서 그런지, 직원들이 책임감도 없고, 주인 의식도 없다”고 했다.

“내가 같이 일한 한국인 직원 누구도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하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낯이 뜨거워졌다.

D씨는 하늘색 셔츠에 검정색 니트를 깔끔하게 갖춰 입은 중년의 유럽 신사였다. “유럽 고객사의 책임자(manager)”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밑 빠진 독에 돈 부어 봐야 IMF로의 회귀죠. 미국이나 유럽이라면 대우조선해양 같은 회사는 벌써 파산했을 겁니다. 대우조선해양도 차라리 파산 하는 게 나을 지 모릅니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