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면 파리가 극성을 부린다. 눈앞에 있는 파리를 잡으려고 손을 뻗어봐도 허공만 가르기 일쑤다. 과학자들은 하찮은 파리에게서도 아이디어를 얻는다. 최근 주목받는 드론(drone·무인비행체)도 파리 같은 곤충의 비행 원리를 모방해 진화하고 있다. 머지않아 파리 로봇들이 사방을 날며 정보를 모으고 점점 사라지는 벌을 대신해 꽃가루받이를 하는 세상이 될지 모른다.

1g도 안 되는 비행 로봇

곤충을 모방한 비행 로봇의 대표 주자는 하버드대의 '로봇 파리(Robot Fly)'다. 탄소섬유 재질에 길이 30㎜ 무게 80㎎으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비행 로봇이다. 로봇의 힘은 압전(壓電)소자로 된 인공 근육에서 나온다. 압전소자는 전기를 받으면 압력이 발생해 모양이 바뀐다. 로봇에 달린 전선에서는 끊임없이 전류가 흘렀다 끊겼다 한다. 이러면 로봇의 날개를 지탱하는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초당 120번씩 날개를 파닥일 수 있다.

파리의 비행 원리를 모방한‘로봇 파리(Robot Fly)’. 무게 80㎎, 길이 30㎜로 지금까지 개발된 비행로봇 중 가장 작다. 오른쪽 위 사진은‘델플라이(DelFly)’, 아래는‘나노 벌새(Nano Hummingbird)’다.

초소형 드론은 도시에서 발생하는 작은 소용돌이에도 맥을 못 춘다. 하지만 파리나 나방은 바람이 불어도 별문제 없이 날아간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1996년 박각시나방의 비행을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해 분석했다. 나방은 날개를 뒤틀어 위쪽으로 공기가 빠르게 지나가도록 했다. 이러면 날개 위의 공기 압력이 아래쪽보다 줄어들어 몸체가 위로 뜨는 양력(揚力)이 발생한다. 앞으로 갈 때는 날개를 아래쪽으로 기울였다.

나방의 몸무게로 아래로 떨어지는 힘과 날개가 만드는 양력이 교묘하게 균형을 이뤄 나방은 빠르게 앞으로 날아갔다. 위로 날 때는 날개를 안으로 접으면서 파닥거렸다. 꽃을 찾아다니며 꿀을 먹는 벌새도 비슷한 원리로 날았다. 자연 모방 비행 로봇도 이처럼 생명체의 진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배워서 기능이 개선되고 있다.

환경 감시에서 꽃가루받이까지

나방과 벌새에 대한 연구 결과는 다양한 비행 로봇을 낳았다. 미국 에어로바이런먼트(AeroVironment)사는 2011년 무게 19g에 날개 길이 160㎜의 '나노 벌새'를 만들었다. 2012년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연구진은 그보다 조금 작은 '델플라이(DelFly)'를 발표했다. 이 경우엔 비행 시 몸의 균형을 날갯짓보다는 내장 전자부품에 의존하는 한계가 있었다. 하버드대의 로봇 파리는 순전히 날개의 움직임으로 비행자세를 조절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비행 로봇으로 곤충의 비행을 좀 더 자세히 연구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연구는 다시 더 나은 비행 로봇의 설계에 활용된다. 곤충형 비행 로봇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재난 현장에서 정보를 모으는 데 유용할 수 있다.

재난 현장에 갈 때는 곤충의 눈을 모방한 초광각카메라를 장착할 예정이다. 파리가 사람의 손을 쉽게 피하는 것은 겹눈을 이루는 수많은 낱눈이 미세한 변화를 각각 감지하기 때문이다. 곤충 눈 카메라는 사람 눈이나 기존 카메라로는 잡지 못하는 조그만 단서까지 포착할 수 있다. 로봇 파리를 개발한 하버드대 케빈 마(Ma) 박사는 "곤충을 모방한 비행 로봇은 화학물질 탐지 센서를 장착해 환경 감시용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며 "갈수록 줄어드는 벌을 대신해 농작물의 꽃가루받이에도 쓰일 날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