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계 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의 자회사인 SC제일은행의 백금(白金) 거래가 불법인지 아닌지를 두고 금융감독원과 SC제일은행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SC제일은행은 2007년부터 SK에너지GS칼텍스 등 국내 정유업체의 요청을 받아 백금을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는 이른바 '메탈론'(metal loan·금속 대출) 영업을 해왔습니다. 백금은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촉매제로 쓰이는 핵심 소재라고 합니다.

금감원은 올해 초 SC제일은행에 대한 검사에서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하고 SC제일은행을 징계한다는 방침입니다. "국내 은행법에 메탈론과 같은 금융서비스가 금지돼 있다"는 것이 금감원의 논리죠. 은행법에 따르면 국내 은행은 통화 성격이 있는 금(金) 외에 다른 금속이나 원자재를 매매하거나 대여하는 등의 수익 창출 업무를 할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을 놓고 금감원을 두둔하는 쪽에선 "국내법으로 금지된 영업을 했다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외국계인 SC제일은행은 평소 중소기업 대출이나 서민금융 활성화 등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면서 "금융당국을 존중하지 않는 SC제일은행의 평소 행태가 백금 거래 위반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고객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은행이 제공했는데, 금감원이 규정만 앞세워 징계하는 게 과연 옳으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미국이나 영국, 일본 등 선진국에선 금융회사들이 귀금속 같은 원자재 거래를 자유롭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법도 법이니 싫어도 지켜야 하고, 어겼다면 처벌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은행들이 다양한 금융상품을 취급할 수 있도록 법을 고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세계 각국이 자원 확보 전쟁에 뛰어들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자금력을 갖춘 국내 은행들이 원자재 거래를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번 사건이 '우물 안 개구리'로 불리는 국내 금융산업의 글로벌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