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나이는 상관없다"는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 속마음은 어떨까? 모 결혼정보 업체가 최근 실시한 연하남·연상녀 커플의 결혼 전 최대 걱정거리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연하남은 43%가 '여성의 연령으로 인한 늦은 출산 문제'를 꼽은 반면 연상녀의 경우 31%가 '나이에서 오는 외모 스트레스'를 걱정했다. 정작 아이를 낳을 여성들에게 출산에 대한 우려는 9.9%로 9위에 그쳤다. 그럼 여성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첫 임신 연령은 언제일까? 답은 평균 28세. 하지만 실제로 첫 임신을 계획하는 나이는 32세로 조사됐다.
사회가 변하면서 출산의 패턴이 달라지고 있다. 결혼 즉 임신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일찍 결혼하는 경우에도 일에 매달리다 늦게 출산하는 여성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2008년 국내 산모의 평균 연령은 31세로 산모의 연령별 구성비 중 30대가 가장 높다.
흔히 노산이라 불리는 35세 이후의 출산율이 20년 전 2%에서 최근 11%로 5배 이상 증가했다. 노산은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며 초혼 연령이 상승함에 따라 나타난 사회현상이다. 결혼보다 경제적 여유와 사회적 성공이 우선시 되는 분위기 탓이다. 하지만 지각 출산으로 인한 임신과 출산의 장애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노산이 산모와 태아에게 늘 위험스런 것은 아니지만 통계적으로는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나이를 먹을수록 정자와 난자도 노화하기 마련이다. 각종 스트레스와 환경오염 등 주변 환경의 악화는 이를 더 촉진시킨다.
노화는 태아에게 염색체 이상이 발생할 확률을 높인다. 특히 다운증후군과 같은 염색체의 수적인 이상은 나이에 비례해 급증(25세는 1200명당, 35세는 300명당, 45세는 30명당 1명)한다. 노화로 인해 수정란의 정상적인 분열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노산에 따른 더 큰 문제는 조산아와 미숙아의 증가다. 태어나자마자 약 6-8%의 아기가 인큐베이터로 직행하고 있다. 1~2달 집중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인큐베이터 병상이 크게 부족할 지경이다. 막대한 경제적 부담은 차치하더라도 조산아는 만성폐질환, 시각 및 청각장애, 신경발달장애 등의 발병 위험이 매우 높다.
당장 산모에게 닥치는 건강의 질 저하도 심각하다. 임신 전엔 없었던 임신성 당뇨와 고혈압, 그리고 우울증 및 난산이 유발될 확률이 2~5배 높아진다. 최근 노산과 그로 인한 위험성의 증대로 임신 전부터 태아의 건강을 대비하는 태아보험이 예비 맘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과 관심은 당장 눈앞의 저출산 문제 해결에만 치우친 느낌이다.
노산의 경우 기형아 출산에 대한 우려 탓에 젊은 임신부에 비해 값비싼 출산 전 검사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60-80만원이 드는 양수검사다. 임신 22주째 심장 및 안면 기형 여부를 확인하는 정밀 초음파 검사도 필수다. 검사 비용만 100만원을 훌쩍 넘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출산 전 진료비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
아이를 낳을 때 안 낳고 낳은 아이는 허약한 지금, 우리 사회는 '출생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평균수명 연장에 따른 고령화는 이러한 위기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다행히 의학의 발달로 위험성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다양한 보완책이 나오고는 있지만 그 위험성 자체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노산에 대한 배려와 대책 없이 단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자녀 몇 명당 얼마를 지원해 준다는 단발성 정책과 출산 장려는 허구에 불과하다. 오히려 "늦둥이나 막둥이"란 미명하에 고령 임신에 따른 위험성을 덮어버릴 수 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다. 하물며 아이를 출산하는데 적정한 연령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좀 더 똑똑하고 건강한 아이를 갖기 위해선 한 살이라도 젊은 나이에 출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좀 더 일찍 건강하게 아기를 낳아 잘 기를 수 있는 사회·문화적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건강한 출산은 우리 모두의 미래를 책임지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