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나 오징어는 바닷속을 헤엄치다 포식자를 만나면 피부색을 바꾸고 빠르게 도망친다. 이들 두족류의 피부에는 색소포(크로마토포어)라는 천연 색소로 채워진 작은 주머니들이 있다. 천적이 나타나면 이 세포들이 팽창하거나 수축하면서 색을 조절하는 원리다. 최근 미국의 과학자들이 오징어와 문어의 피부를 모방한 인공 피부를 개발했다.
미국 네브래스카링컨대 스티브 머린 교수 연구팀은 17일(현지 시각) 해양생물인 오징어와 문어의 피부처럼 주변 자극에 반응하며 색깔이 변하는 인공 피부용 소재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에 지난달 24일에도 소개됐다.
최근 과학자들은 자연의 원리를 응용해 난제를 해결하는 생체 모방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오징어와 문어 같은 해양 생물에서 영감을 받아 인공 손과 같은 소프트 로봇과 기계 장치에서 사용하기 위해 개발되고 있는 인공 피부는 대표적인 사례다.
연구진이 이번에 개발한 인공 피부 소재는 바다 생물인 두족류가 피부색과 패턴을 바꾸는 원리를 모방한 것이다. 별도로 전기를 공급하거나 압력을 가하지 않아도 주변 자극에 저절로 반응하는 인공 피부를 제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연구진은 오징어와 문어 피부에 있는 색소포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마이크로액추에이터들이 배열된 합성 피부를 개발했다. 탄성이 있는 고분자화합물로 이뤄진 이 인공 색소포는 생물의 색소포처럼 열을 포함해 다양한 외부 자극을 받으면 팽창하거나 수축하는 방식으로 색을 띤다.
별도로 전기를 공급하지 않아도 스스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은 소프트 로봇 분야에서 강한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딱딱한 화면이나 전력 소모가 큰 전자 장치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웨어러블 디스플레이로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연구진은 이 기술이 유연하면서 방수 기능이 필요한 분야에서 기존 디스플레이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머린 교수는 “오징어나 문어가 자신의 몸 색깔을 매우 빠르고 역동적바꾸고 도망치는 걸 상상해 보라”면서 “새로운 인공 피부 기술이 소프트 로봇과 새로운 유형의 인간기계인터페이스 분야에서 흥미로운 기회를 열어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공 색소포는 열, 빛, 습도, pH(수소이온농도지수) 같은 다양한 자극에 따라 반응하는 색상을 미리 설정할 수 있다. 이런 특성을 이용하면 여러 환경 변수를 동시에 감시하는 웨어러블 센서를 개발하는 데 유용하다.
머린 교수는 “기존 기술로는 특정 조건에서 온도나 습도, 산성도를 동시에 측정하는 것이 어렵다”며 “이번에 개발된 소재의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환경, 특히 전자 제품이 고장 나기 쉬운 습하거나 수중 환경에서 화학적 성질을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고, 매우 특정한 자극에 반응하는 재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문어와 오징어의 피부에서 영감을 얻은 인공 피부 기술은 최근 과학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연구 주제로 떠올랐다. 미국 노스이스턴대 연구진은 지난 2023년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에 두족류의 색소포에 들어 있는 천연 색소를 이용해 외부 빛 자극에 따라 색이 바뀌는 페인트를 개발했다고 공개했다.
문어나 오징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피부색을 바꾸는 카멜레온을 모방한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중국과학원 연구진은 지난해 액체금속입자와 콜로이드를 이용해 카멜레온 피부 구조를 모방한 전자 피부를 개발했다고 소개했다. 이 전자피부는 신축성이 뛰어나 웨어러블 센서, 지능형 로봇, 건강 모니터링 분야에서의 폭넓은 응용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참고 자료
Advanced materials(2025), DOI: https://doi.org/10.1002/adma.202505104
Advanced Functional Materials(2024), DOI : https://doi.org/10.1002/adfm.202412703
Advanced Science(2023), DOI : https://doi.org/10.1002/advs.202302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