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세포 속에 단백질이나 유전정보를 담은 메신저리보핵산(mRNA)을 미리 저장해뒀다가, 빛을 비추면 원하는 시점에 꺼내 쓸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 약물이 필요할 때만 단백질을 활성화하거나 유전 정보를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어 뇌 연구나 유전자 치료, 신약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KAIST는 허원도 생명과학과 석좌교수 연구팀이 박용근 물리학과 석좌교수팀과 함께 세포 속 단백질과 mRNA를 저장해 두었다가 빛으로 방출하는 ‘릴리저(RELISR)’ 기술을 개발했다고 23일 밝혔다. 릴리저는 ‘빛으로 저장했다가 다시 꺼낸다’는 뜻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지난 7일 실렸다.
빛으로 생체 분자를 조절하는 기술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세포 안에는 다양한 단백질과 RNA가 섞여 있어서 원하는 것만 정확히 다루는 데 한계가 있었다. KAIST 연구팀은 필요한 분자만 골라 붙잡을 수 있는 단백질 복합체를 이용해, 단백질이나 mRNA만 선택적으로 저장하고 빛으로 꺼내는 방식의 시스템을 만들었다. 세포·동물실험에서도 이 기술이 잘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이용해 세포 모양을 바꾸거나, 신경세포 안에서 특정 단백질이 언제 작동할지 실시간으로 조절하는 데 성공했다. 또 mRNA가 단백질로 바뀌는 시점도 빛으로 조절할 수 있었으며, 이런 기능이 실제 쥐에서도 가능하다는 걸 확인했다.
기존에는 단백질이나 mRNA를 세포 안에 ‘가두는’ 기술만 가능했지만, 이번 연구는 빛을 쬐면 그 분자들을 바로 ‘꺼내’ 실제로 작동할 수 있게 했다.
이번 연구는 KAIST 생명과학연구소 이채연 박사가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허원도 교수, 박용근 교수, 유다슬이 박사 등이 함께 연구를 이끌었다. 특히 박용근 교수팀은 이 기술이 세포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영상으로 분석해, 실험의 정밀도와 신뢰도를 높였다.
허원도 교수는 “이번에 개발한 릴리저 기술은 빛을 이용해 단백질이나 mRNA를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꺼내 쓸 수 있는 만능 도구”라며 “뇌 속 신경세포를 연구하거나, 세포치료제나 신약을 개발하는 데 다양하게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유전자 가위 기술이나, 특정 조직에만 약물을 전달하는 기술과 결합하면, 훨씬 정밀한 치료 방법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고 자료
Nature Communications(2025),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5-61322-y
